유해 확인하고도 수습은 못하는 상황
유족들 정부에 유해 수습과 사고원인 규명 촉구
“광화문 천막을 지키며 서명을 받아온 지난 2년의 시간이, 제가 살아온 65년 세월보다 더 길게 느껴집니다. 언제까지 이런 고통이 지속될까요. 간절하게 묻고 싶습니다.”
2017년 3월 31일 축구장 3배 크기의 대형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를 운항하던 아들은 지구 반대편 바다 한 가운데에서 사라졌다. 오는 31일이면 스텔라데이지호가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한 지 2년. 유해 수습과 사고원인 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일등항해사 박성백씨의 어머니 윤미자씨는 끝내 뜨거운 눈물을 터뜨렸다.
기자회견 내내 차분히 심해 수색 결과를 설명한 이등항해사 허재용씨의 누나 허경주씨의 목소리도 덩달아 떨렸다. “남반구는 이곳과 계절이 반대라 이제 곧 겨울입니다. 만약 수색 일정이 반년 후로 밀린다면, 이번 수색 결과에서 발견했던 그 유해는 과연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을까요. 영영 사라져서 찾지 못하게 될까 봐 밤에 잠조차 오질 않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2주기를 맞아 실종 선원 가족과 시민대책위가 2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달 21일 외교부는 “심해 수색 업체인 오션 인피니티사가 선체 주변 해저에서 사람 뼈로 보이는 유해의 일부와 작업복으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수색 과정에서 찾은 실종자 유해는 차가운 바닷속에 그대로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책위는 정부가 심해 수색 업체와의 계약 조건에 ‘유해 수습’ 관련 조항을 누락하는 바람에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마셜 제도 선적인 스텔라데이지호는 브라질에서 철광석 26만톤을 싣고 출항해 중국으로 항해하던 중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당시 필리핀 선원 2명은 구조됐지만, 한국인 8명을 포함한 22명은 실종됐다.
사고 이후 실종자 가족들의 끈질긴 요구와 건의 끝에 지난해 12월 외교부는 미국의 심해 수색 업체인 오션 인피니티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지난달 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출항한 수색선은 같은 달 14일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해역에 도착했고, 3일만에 선체를 발견해 블랙박스를 수거했다. 하지만 당초 25일 내외로 예정돼 있던 수색은 9일만에 끝났다. 해저 탐사 과정에서 발견한 유해는 수습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돌아왔다.
정부 측은 “오션 인피니티사와의 계약 체결 당시 ‘유해 수습’과 관련된 조항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해명’이라고 주장한다. 허경주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는 “정부는 계약체결 이전인 지난해 11월부터 이미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내용을 계약에 넣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해 수습과 관련된 부분 이외에도 심해 수색 과정은 전반적으로 미진했다. 수색의 주요 목적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지만 오션 인피니티사는 이조차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는 게 가족대책위의 주장이다. 당초 정부는 오션 인피니티사에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중요 증거로서 3D 모자이크 영상을 구현해달라고 요청했다. 계약 사항에도 명시돼 있었지만, 막상 수색에 돌입하자 오션 인피니티사는 “선박이 72개 조각으로 부서진 채로 흩어져 있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해왔다. 이에 대해 허 공동대표는 “과거 2,000조각으로 쪼개져 있던 배도 3D 모자이크 영상 구현을 했던 예가 있다”면서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심지어 수거한 선체 내 블랙박스는 데이터 추출 자체가 잠정 중단됐다. 이에 대해 주관부처인 정부는 최근까지도 “대책을 고민 중”이란 답변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날 대책위는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심해수색의 미완수 과업인 △행방불명 구명벌 2척 위치 확인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수준의 3D 모자이크 △유해 수습 및 추가 유해 수색을 촉구하는 서한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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