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익 단체들이 최근 10년간 유럽의 극우 세력을 지원하는 데 최소 5,000만달러(한화 568억원) 이상의 로비 자금을 쏟아 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일부 단체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도 직ㆍ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어 미국 정부가 유럽에서 극우 물결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28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영국 독립미디어플랫폼 ‘오픈데모크라시’는 금융 공시자료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2008~2017년 미국의 우파 기독교 단체 15곳의 지출내역을 살펴본 결과, 유럽의 극우 성향 활동가 또는 캠페인에 5,100만달러(579억여원) 이상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DW는 “2018년 금융 자료,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은 교회들의 지원금은 분석 대상에서 누락됐다”며 “5,000만달러라는 수치는 실제 지원금보다 과소평가됐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로비 자금이 정확히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그러나 오픈데모크라시는 △유럽연합(EU) 관리들에 대한 로비 △증오연설금지법과 관련한 유럽 법정에서의 이의 제기 △동유럽ㆍ남유럽의 ‘성소수자(LGBT) 및 낙태 반대 캠페인 지원’ 등에 이 돈이 쓰였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중도좌파 계열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앨린 스미스 유럽의회 의원은 “이번 보고서는 우리(유럽) 정치권이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자금과 조직화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줬다”며 “관련 대응을 위해 ‘행동촉구’라는 초당파 조직을 꾸린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트럼프 행정부와 연결된 단체들이 보고서 곳곳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미국의 기독교 보수단체 ‘법과 정의를 위한 미국센터(ACLJ)’의 수석자문위원인 제이 세큘로우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방어한 변호인단 중 한 명이다. 또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 법률단체 ‘자유수호연맹(ADF)’는 억만장자 갑부인 벳시 데보스 미 교육장관 가문과 관련된 재단에서 수백만달러의 기부금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극우 논객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연루 정황도 드러났다. DW는 “미국 미시간주의 싱크탱크 ‘종교자유액튼연구소’가 배넌이 소속된 이탈리아 로마 소재 우익 싱크탱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넌은 지난해 벨기에 브뤼셀에 정치컨설턴트 업체 ‘더 무브번트’도 설립하는 등 유럽 우파 포퓰리스트의 선거운동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까닭은 유럽의회 선거(5월 23~26일)가 불과 2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DW는 “지난 몇 년간 유럽 각국의 선거에서 극우 세력이 보인 대약진은 유럽의 ‘중도 정치’에 위기감을 심어 줬다”며 “최근 여론조사도 극우파 정당들이 유럽 의회에 상당수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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