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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왜군 맞선 최경회 장군 ‘4월 호국인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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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왜군 맞선 최경회 장군 ‘4월 호국인물’에

입력
2019.03.29 17:41
수정
2019.03.29 18:3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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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이 금산전투, 무주대첩 등에서 대승하며 공을 세운 최경회 조선 장군을 '4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전쟁기념관 제공
전쟁기념관이 금산전투, 무주대첩 등에서 대승하며 공을 세운 최경회 조선 장군을 '4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전쟁기념관 제공

전쟁기념관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왜군에 맞선 최경회 장군을 ‘4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532년 전남 화순읍에서 태어난 장군은 1567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사헌부 감찰, 형조 좌랑, 영암 군수, 담양 부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도 의병 진영의 권유를 받은 그는 의병장이 됐다.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자 화순과 능주 등에서 800여 명의 의병이 결집했다.

장군의 의병부대는 담양과 순창, 남원을 거치며 군세가 불어나 ‘우의병(右義兵)’이라는 부대명도 얻었다. 전라 우의병은 금산전투, 무주대첩 등의 공을 세웠다. 왜군들이 호남을 점령하고자 진주성으로 집결하자 우의병을 이끌고 진주 목사 김시민과 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593년 6월 가토 기요마사가 10만 왜군을 이끌고 다시 진주성을 침략하자, 장군은 병사 700여 명을 이끌고 창의사 김천일 등과 진주성 사수에 나섰다. 10만 대군의 공격에 맞서 열세에도 무려 9일간 진주성 방어에 성공했지만, 진주성은 결국 무너졌다.

장군은 김천일, 고종후와 촉석루에 올라 임금의 처소인 북쪽을 향해 4배를 한 후 스스로 남강에 투신해 순절했다. 사후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됐으며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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