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베트남 정부가 ‘최고 수준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레 티 투 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가진 정례 브리핑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이뤄지고 있는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다음 재판 이전에 주말레이시아 베트남 대사관에서 다시 한번 더 흐엉 면회를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4월 1일 열린다.
흐엉과 함께 기소됐던 인도네시아 여성이 지난 11일 석방된 것과 달리, 혐의가 같은데도 흐엉에 대해서는 14일 석방이 불허됐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주베트남 말레이시아 대사를 초치하는 등 말레이시아에 강한 유감을 표시한 바 있다.
흐엉의 변호를 맡고 있는 히샴 테 포테익(히샴 빈 압둘라) 변호사는 토미 토머스 말레이시아 검찰총장에게 석방을 요청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이날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앞서 제출한 석방 요구 진정을 거부한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검찰총장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흐엉은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처럼 자유의 몸이 되거나 살인 혐의가 (더 가벼운 혐의로) 변경될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엔 살인 혐의로 계속 재판을 받게 될 것”라고 덧붙였다.
흐엉은 시티와 함께 2017년 2월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이들은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들의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됐다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김정남을 살해할 당시 두 여성이 보인 모습이 '무고한 희생양'이란 본인들의 주장과 거리가 있다면서 이들이 '훈련된 암살자'라고 반박해 왔으나, 지난 11일 돌연 시티에 대한 공소를 취소했다. 재판부는 별도의 무죄 선고 없이 시티를 즉각 석방했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흐엉 역시 석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토미 검찰총장은 이를 거부하고 재판을 계속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말레이시아 사법당국이 흐엉을 석방하지 않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시티 석방 이후 심화하는 야당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말레이시아 정부의 전략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와 함께 김정남과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시티와 달리, 흐엉은 김정남의 등 뒤로 접근해 얼굴에 VX를 바르는 모습이 촬영된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또 출신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차이도 거론된다. 인도네시아는 시티가 체포된 직후 현지인 변호사 4명을 고용하고 조속한 석방을 위해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베트남 정부는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쏟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항 대변인은 “지금까지의 약 20차례의 모든 재판에 베트남 외교관이 참석했다”며 “그 외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석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했다”고 반박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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