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ㆍ카이스트) 경영공학부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정우빈(28)씨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Korea United College Orchestra, KUCO)에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단원 전체를 대표하는 악장이다. 그는 전공과 상관없는 바이올린을 들고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할 만큼 클래식 음악에 빠진 ‘클래식 덕후’다. 그는 클래식을 “상상력을 키우는 음악”으로 정의했다. 평범한 경영학도를 연주자로 바꿔놓은 클래식의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 다시 활을 잡게 된 것은 금난새 덕분
정씨는 7세때 바이올린 활을 잡았다. 그가 바이올린에 빠진 이유는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평생 즐길 수 있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연습할수록 현과 활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여럿이 만드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중학교 음악 교사인 아버지가 지휘하는 춘천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연습했다. 바이올린 전공을 고민했지만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한동안 악기를 잡지 못했다.
정씨가 다시 바이올린을 하게 된 것은 지휘자 금난새 덕분이었다. 포항공대 산업공학과에 진학하고 첫 번째 맞은 새내기 여름방학 무렵, 학교에서 열린 ‘포스텍 뮤직 페스티벌’에서 금난새를 만났다. “KUCO 창단 멤버인 고교 선배의 권유로 금난새씨가 지휘하는 KUCO의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당시 저는 밴드 동아리에서 전기기타를 연주했어요. (웃음)”
KUCO는 여러 대학의 각기 다른 학과를 다니는 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다. 듣는 것을 넘어 직접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정씨의 열망이 2010년부터 KUCO 활동으로 이어졌다.
오디션에 합격한 뒤 정씨는 주말마다 오케스트라 활동에 매진했다. 학교가 있는 포항과 서울, 본가인 춘천을 매주 왕복했다. 왕복 거리만 700㎞였다. “그때 클래식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학업 외 개인 시간을 대부분 연주하고 공연 보는 데 썼죠. 음악과 악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꿈을 펼치지 못한 것을 가족들도 아니까 지지해줬어요.”
정씨는 제1바이올린 수석, 제2바이올린 수석단원을 거쳐 2013년부터 악장을 맡아 KUCO를 이끌고 있다. 2014년과 2015년 방영된 tvN 프로그램 ‘언제나 칸타레’에도 출연해 실력을 뽐냈다.
◇ “클래식도 스타를 찾아 덕질을 해보세요.”
정 씨가 꼽는 클래식 음악의 재미는 ‘상상’이다.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나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다른 음악이 된다. “여러 교향악단이 연주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반 10초씩 비교한 적이 있어요. 도입부만 들어봐도 모두 달라요.” 음악이 주는 섬세한 느낌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론 그에게도 어려운 클래식 곡들이 있다. 하지만 반복해 들을수록 상상력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연주자의 음악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같은 곡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연주하는지 찾아서 듣게 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협주곡을 여러 번 듣다가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연주를 찾는 식이죠. 각자의 매력이 다른 것을 알게 돼요.” 그것이 곧 클래식 음악에 익숙해지면서 지평을 넓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정씨는 클래식 분야에서도 스타 음악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유명 연주가들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 클래식을 위한 일종의 진입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봐요. 리처드 용재 오닐의 실내악 그룹 앙상블 디토가 외모나 패션으로 마케팅을 했는데 공연이 잇달아 매진되는 등 관객 저변을 넓히는 효과가 있었죠.”
정씨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들이 클래식에 빠져드는 또다른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KUCO 외에도 AOU, 가우디움, 코레일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아마추어 교향악단이 활발히 활동한다. 이들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음악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로가 아니어서 결점 없는 연주는 당연히 불가능해요. 기술적 완성도보다 청중에게 노래처럼 들리도록 짜임새를 다듬는데 치중해요.” 그래서 여러 지휘자들은 KUCO를 지휘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에너지가 있다고 한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들은 주말을 이용해 연습하고 연간 두세 차례 정기공연을 연다.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이 만만치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대학생 때 경험하지 않으면 평생 누릴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즐기는 취미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 씨는 이번 주말에도 오케스트라 연습에 참여한다. 그에게 다른 악기에 도전해 볼 생각이 없는지 물었으나 고개를 저었다. “바이올린만 해도 연습할 게 너무 많아요. 실내악이나 솔로 연주 등 형식이 바뀔 수 있겠지만 평생 바이올린과 함께할 것이라 확신해요.”
장우리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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