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전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야길 하려나 싶어 몇 발자국 다가서니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를 표현한 회화는 사실 버려진 플라스틱 숟가락의 집합체. 경이롭게 그려진 비너스를 들여다보니 그의 찰랑대는 머리카락은 폐비닐봉투가 만든 물결이다. 미국의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56)은 말한다. “관객들이 예술 작품을 보고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길 바라죠.”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조던의 사진전에선 이처럼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을 다룬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명도 ‘아름다움 너머’. 아름다움을 좇는 보통의 예술과는 달리 그 너머에 숨은 슬픔과 고통, 재앙을 다룬다. 인류의 대량 소비, 환경 파괴 같은 문제를 꾸짖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치유 가능성을 찾겠다는 조던의 메시지가 담겼다.
작품의 묘미는 ‘멂과 가까움’의 차이를 극대화한 데 있다. 미국에서 1분마다 낭비되는 전기 규모(킬로와트)와 동일한 수인 32만개 백열전구를 모아 만든 우주의 모습, 전 세계에서 10초 마다 소비되는 비닐봉지 24만개로 그린 비너스, 플라스틱 라이터 수십만개가 그려낸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 등이 대표적이다. 조던은 이러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실제 버려진 숟가락이나 라이터, 물병, 비닐봉투, 인형들을 모아 사진을 찍고 이를 컴퓨터로 옮겨 색감, 구성 등을 조정했다고 한다. “수많은 개별의 것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듯, 한 개인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되새기게 하고 싶었어요.”
조던은 “슬픔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대표작 ‘알바트로스’ 시리즈는 이 같은 메시지를 깊게 품고 있는 작품이다. 8년 간 미드웨이섬을 오가며 찍은 알바트로스 사진과 영상들로 구성됐는데, 멋진 부리와 깃털을 가진 새들의 모습 뒤에는 인류의 욕심으로 황폐해가는 생태계가 그려진다. 조던이 알바트로스 사체의 배를 갈라 그 안에 플라스틱 조각이 가득 남은 것을 확인해 기록한 모습, 어미 알바트로스가 아기 새에게 플라스틱을 먹이는 사진은 죄책감을 넘어 큰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슬픔 그 자체만을 보여주려는 건 아니다. 살아 숨쉬는 알바트로스의 깊은 눈, 나무로 빼곡한 숲, 뜨는 해, 이끼 속에서 자라나는 꽃봉오리 등 생명력이 넘치는 사진을 전시 군데군데 심어놓은 이유다. “어렸을 땐 화내고 두려워하는 것이 안 좋은 일이라 배웠고 항상 행복하라는 이야길 들었지요. 하지만 슬픔을 제쳐두거나 거부하지 말고 직면해야 해요. 이러한 메시지를 예술로 표현하고 싶었죠. 예술은 존재의 본질, 그리고 감정을 불러일으켜요. 치유의 힘이 있지요.” 전시는 5월5일까지 진행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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