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헌법재판소를 비판하는 기사 초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부인했다. “기자들이 기사 형태의 보도자료를 좋아해서 그랬을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임 전 차장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기사대필 혐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임 전 차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016년 3월18일 박한철 헌재 소장이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 제도 등에 반감을 표하자 행정처 심의관을 시켜 박 소장 비판 기사 초고를 작성토록 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심의관은 지시에 따라 ‘박한철 헌재 소장, 거침없는 발언으로 법조계 술렁’이란 제목의 초고를 작성해 특정 언론사에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 전 차장은 “대법원 위상을 폄하하는 박 소장의 일방적 발언에 대한 대응이었을 뿐”이라며 “공소사실과 같이 헌재를 깎아 내리거나 박 소장의 도덕성을 흠집 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자들은 단순 설명자료로 주면 그걸 다시 이해하고 재편집해 써야 하기 때문에 기사와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주는 걸 좋아한다”며 “그래서 초안을 마련해보라 정도로 지시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임 전 차장은 또 “실제 기사는 반론을 상세히 취재해 균형 있게 보도했기 때문에 박 소장의 명예를 훼손한 것도 아니다”며 “지시가 부적절했을 수 있지만 심의관의 양심의 자유나 박 소장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그러나 “심의관이 ‘한 차례 저항했음에도 피고인이 역정을 내 어쩔 수 없이 썼다’고 진술했다”며 반박했다. 검찰은 “당시 심의관이 행정처 내 관료적인 문화를 설명하며 ‘KKSS’를 언급했는데, ‘까라면 까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의미였다”며 “심의관은 피고인의 강요에 따라 초안을 작성한 게 맞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던 시진국 전 법원행정처 심의관(현 통영지원 부장판사)은 자신의 재판일정과 겹친다며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시 전 심의관에게 다음 달 17일 재출석을 요구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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