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상 질병으로 선천성 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을 경우, 아이에게도 산업재해보상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고용노동부는 28일 ‘자녀 건강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해당 자녀도 산재보험 보장 대상이 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모성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고 여성근로자들이 많이 겪는 업무상 질병 인정 범위를 확대하자는 차원이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고용부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이런 내용의 산재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고용부와 협의를 거친 사실상 정부안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여성 근로자가 임신 중에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돼 자녀가 출산 후 사망하거나 선천성 질환을 갖고 태어난 경우를 업무상 질병의 범위에 포함한 것이다. 모체와 태아를 분리되지 않는 동일체로 본다는 의미다. 기존에 업무상 질병과 사고, 출퇴근 재해 등을 포함한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 본인’에게만 한정돼 있다.
자녀에 대한 산재보상 문제는 2009년 제주의료원에 근무 중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유산하고 4명의 아이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나면서 제기됐다.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근로자로만 명시돼 선천성 질환을 갖고 태어난 자녀들은 모체의 업무상 유해성 요인과 인과관계가 밝혀졌음에도 산재보험급여 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소송으로 간 이 사건은 1심에서 청구권을 인정받았으나 2심에서 뒤집히며 2016년 6월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고용부는 자녀에 대한 산재 보상이 인정되면 장기적으로 기업들이 모성을 보호하는 작업환경을 조성하는데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이에따라 선천성 기형아 출산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생식독성 유해물질에 노출된 가임기 여성근로자(40세 이하 여성으로 정의)수는 10만6,000명이고, 이들의 업무상 유해물질 노출이 원인이 돼 태어나는 선천성 기형아 42명으로 추정된다. 연구책임을 맡은 이현주 우송대 간호학과 교수는 “산재보험 수급자의 남녀 비율은 8.5대1.5 수준”이라며 “산재가 사고보다 질병으로 나타나는 여성 근로자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질병 인정 기준이 협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산재보험 보장 비율의 남녀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국회 계류 중인 유사 법안들(4개)과 달리 부모가 선천성 질환인 자녀 간병을 위해 휴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고 돌봄 등을 위한 휴가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휴업급여는 최대 2년, 평균임금의 최소 70% 이상 지급되는데, 4대 보험 중 산재보험에만 있다. 이용득 의원은 “모체가 업무상의 사유로 위험에 노출됐고 그 영향이 태아에도 미쳤다면, 자녀도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며 “개정안이 산업안전 분야에서 모성보호조치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평식 고용부 산재보상정책과장은 “시행령과 고시 등 하위법령 마련을 위한 2차 연구용역도 시작했다”며 “선천성 질환 자녀에게 필요한 치료들을 검토해 적절한 요양급여 수가체계 등을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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