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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21세기 프리메이슨, 자유조선

입력
2019.03.2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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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北대사관 침입한 비밀단체

새터민 등 김정은 정권 타도 외쳐

美도 접촉, 北의 ‘눈엣가시’ 될 듯

“당신들은 형체가 없는 신비한 그림자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의 개인 손전화 번호를 안 것부터 탈출 과정에 신속하게 동원한 고급 승용차, 비행기까지 당신들의 열정과 빈틈없는 준비는 매우 놀라웠습니다.”

‘천리마민방위’가 2017년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들이 탈출을 도운 북한 고위 간부가 보낸 감사 편지라며 공개한 내용이다. 그해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하자, 천리마민방위는 3월 김정남의 아들이자 김정일의 장자인 김한솔과 가족을 마카오에서 구출해 보호 중이라며 그의 모습과 육성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해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 단체가 다시 세계 언론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2월 22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한 사건 때문이다. 스페인 당국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대사관에 침입한 이들은 한국과 미국, 멕시코 국적자를 포함한 10명으로, 이들 중 1명이 사건 뒤 미 연방수사국(FBI)과 접촉했다고 밝혔다. 이후 천리마민방위에서 ‘자유조선’으로 이름을 바꾼 이 단체는 대사관 침입이 자신들이 주도한 일이라고 인정했다. 미국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거부했지만, 미국 정부가 적대국 정부 붕괴를 위해 해당국 비밀단체와 접촉하고 공조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1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 대사관 담벼락에 낙서가 그려져 있다. 자유조선의 로고가 선명하다. 트위터 캡처
지난 1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 대사관 담벼락에 낙서가 그려져 있다. 자유조선의 로고가 선명하다. 트위터 캡처

미국이야말로 비밀단체가 큰 역할을 해 건국된 나라다. 미국 독립운동이 발발한 1775년 4월 18일 새벽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주변 마을로 말을 달리며 영국군의 침공 소식을 알렸던 은 세공업자 폴 리비어는 당시 미 대륙의 유력 인사들이 다수 가입한 비밀단체 프리메이슨의 주요 멤버였다. 그는 프리메이슨 네트워크를 통해 1770년 영국군이 자행한 보스턴 학살을 미 전역에 퍼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독립을 성취한 후 1789년 4월 30일 치러진 미국 초대 대통령 취임식에 조지 워싱턴은 프리메이슨 휘장을 두르고 나타났다.

영국 출신 스타 역사가 니얼 퍼거슨은 네트워크가 역사에 미친 영향을 다룬 최신작 ‘광장과 타워’에서 지금까지 미국 건국 과정에서 프리메이슨의 역할이 과소 평가돼 있다고 주장한다. 퍼거슨은 ‘광장’으로 상징되는 네트워크가 시대 흐름에 결정적 역할을 미쳤던 것은 오늘날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쇄술의 발달과 그에 따른 사상의 자유가 급격하게 확대됐던 18세기가 네트워크의 위력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났던 시기라는 것이다. 이후 다시 ‘타워’로 상징되는 권위주의 시대가 복구되는 듯하지만 그 밑에서 네트워크의 위력은 계속 영향력을 키워 왔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표되는 21세기는 ‘광장의 르네상스’라 할 만하다. 특히 서적이나 유선망을 뛰어넘어 바로 휴대폰이 보급된 개발도상국들에서 네트워크는 커다란 정치적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 재스민혁명을 시작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휩쓸었던 일련의 혁명 네트워크의 토대를 제공한 것이 SNS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도 휴대폰이 널리 보급돼 있다. 새터민 출신 주성하 기자는 SNS에서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휴대폰 보급을 용인한 것은 2008년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초래된 달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 장롱 속 돈을 끌어모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분석한다. 비록 북한 휴대폰은 외부 인터넷과 차단돼 있지만, 그 결정은 은둔 독재정권의 ‘판도라 상자’를 연 것이다.

스페인 당국 수사에 따르면 북한대사관 침입자들은 한국 출신 교포, 한국인, 새터민으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이들은 이른바 ‘백두혈통’의 장손 김한솔뿐 아니라, 세계 최강 미국과 연결돼 있다. 이 소식이 휴대폰을 통해 북한 전역에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론 자유조선의 자체 역량과 네트워크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런 비밀 단체가 실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북한 내에서 자생하고 있을 반정부 비밀단체에 얼마나 큰 자극이 될지 역시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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