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ㆍ시민단체는 신속 비준 촉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정 합의 시한을 4월 초까지 열흘 정도 연장했다. 경영계 복귀로 노사정 대화가 재개된 데 따른 것이다.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LO 협약 비준 지연으로 유럽연합(EU)의 제재가 이뤄지면 현대기아차 등 수출 기업에 괴멸적 피해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ILO 협약 문제를 다루는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ㆍ관행 개선위원회의 박수근 위원장은 28일 전체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ILO 협약 비준에 필요한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노사 협의가 지금 진행 중”이라며 “4월초까지 노사 합의가 이뤄지도록 촉구하고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8일에는 노사정에 논의 시한을 3월 말로 통보한 바 있다. 이날 노사정은 전체회의와 별도로 부(副) 대표급 만남을 갖고 쟁점 사안을 검토했다. ILO 협약 비준을 하려면 해고자, 실업자, 교사 등의 노조 할 권리(단결권)를 폭 넓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하면 된다. 그런데 경영계가 ILO 협약과는 무관한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폐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5대 과제를 ‘기업 방어권’ 차원에서 함께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의 진전이 더딘 상태다.
이에 대해 제도ㆍ관행 개선위 공익위원 간사를 맡고 있는 이승욱 교수는 이날 브리핑 직후 ILO 협약 비준을 안 해도 큰 문제 없을 것이라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EU는 한국 정부가 ILO 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을 근거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며 공식 분쟁해결절차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 교수 등 공익위원들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EU가 제시한 시한(4월 9일)을 넘기면 EU의 보복이 있을 수 있다며 시한 내 합의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자 경총은 26일 입장문을 내고 이 교수 등의 주장에 대해 “과장되고 선동적인 추측에 가깝다”고 정면 반박했다. 협정문상 ILO 협약 비준 의무를 위반해도 경제적 제재를 부과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 보복은 ‘괴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관세 제재는 할 수 없지만 그 외에 굉장히 다양한 제재 옵션이 있다”면서 라트비아, 스리랑카, 미얀마 등 노동권 관련 문제로 EU나 ILO로부터 제재를 당한 나라 사례를 거론했다. 이 교수는 “특히 EU가 5월 의회 선거를 앞두고 인권을 지킨다는 모양새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내부 사정과, 한국과 같은 내용으로 EU와 FTA를 체결한 일본에 선례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피해는 경총이 아닌 개별 기업에 갈 것이고 특히 유럽에 수출하는 현대기아차에는 거의 괴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노사정 합의가 안되고 지금처럼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정부가 먼저 비준을 한 뒤 입법은 추후에 하는 ‘선(先) 비준 전략’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해영 고용노동부 국제협력담당관은 “노동 분야에서 국가 아미지 실추가 예상되고, 어떤 내용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 밖에 여러 가지 불이익 가능성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총은 이 교수 발언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FTA 협정은 그 규정과 문구에 따라 냉정하고 엄정하게 국가 간에 이행되고 준수되는 것”이라며 “이 교수가 개인적 차원에서 학자적 식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다고 보나 경사노위 공익위원으로서는 한계를 벗어난 발언이라 여겨지며 경사노위가 이 교수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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