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서로 패싱하며 감정적 대응 머물러선 안돼
정치ㆍ외교 갈등과 달리 민간부분 관계는 성숙
오쿠조노 히데키(奥薗秀樹) 시즈오카(静岡)현립대 교수는 최근 악화하고 있는 한일관계와 관련해 “양국이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를 인식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며 “양국이 객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상대국에 대한 가치를 판단해야 하는데 현재 그러지 못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오쿠조노 교수는 지난 22일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양국 정부가 상대국을 서로 패싱하는 식의 감정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도“구태의연한 정치ㆍ외교 분야의 갈등 속에서 일본 내 K팝 인기는 식지 않고 있으며 한국에서 지난해 750만명 이상이 일본을 찾았다는 것은 민간에서의 양국 관계는 상당히 성숙돼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_한일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상륙을 전후로 한일갈등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이전은 역사 교과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정치인 망언 등 개별 사안에 대한 대립이었다면 현재는 양국관계의 구조적인 변화에 따른 대립이란 측면이 강하다. 때문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의 변화를 서로 인식하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일본은 과거에 비해 대등해진 한국을 받아들일 용기가 부족하고,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한국이 주도해서 남북관계만 잘 풀리면 미국ㆍ중국ㆍ일본 등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신(自信) 과잉인 상태로 보인다. 양국이 모두 객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상대의 가치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이다.”
_일본에선 다른 현안보다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반발이 크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의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한국 측은 5개월 정도 ‘검토하고 있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일본 측은 한국이 과연 일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한일관계 비전을 제시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이와 관련, 한국은 대일관계에서 피해자로서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일본은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1965년 협정이 가해자ㆍ피해자 관계를 넘어 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에 양국이 합의한 협정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대법원 판결)에 의해 흔들리면서 반발하는 것이다.”
_현재의 갈등을 진정시킬 대안이 있나.
“현 상황에선 한국 정부가 신일철주금이나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의 압류자산의 현금화 움직임을 자제하도록 원고 측 변호인단을 설득하는 등의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서 관계 개선책을 강구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은 현금화가 진행되면 실제 피해를 입게 될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항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태에 이르는 일은 서로 피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타협안을 상정해 본다면, 한국 정부가 현금화 움직임을 제어하고, 일본 기업과 청구권 자금을 받은 한국기업들과 함께 재단을 만드는 이른바 ‘2+1’ 혹은 ‘1+1’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반발하면서도 민간에서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를 묵인하는 형태를 가정해 볼 수 있다.”
_일본은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도 검토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응해야 성립이 되는 이야기이긴 하나, 양국이 그 결과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는 전제 하에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다만 한국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경우 한국 국내 여론이 가만히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장담할 수 없다. 또 2011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협의를 요청했지만 일본이 받지 않은 전례가 있다. 그래서 이번엔 위안부 문제와 징용판결 문제를 같이 논의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본 정부가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_정부 차원의 갈등에도 민간교류를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한일관계는 정치ㆍ외교만이 아니라 대단히 다양하고 중층적이다. 언론이 양국의 정치ㆍ외교가 구태의연한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면 양국관계의 실태를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문재인 대통령이 3ㆍ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친일잔재 청산’을 언급했다. 지극히 국내적인 이슈 차원에서 거론한 건데, ‘친일’이란 단어가 있다고 일본을 겨냥했다는 식으로 무조건적으로 반응해선 안 된다. 반대로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가 미국에 북한과 안이한 타협을 하지 않도록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자국 안보를 지키기 위해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의 정책방향과 다를 수 있지만 의도적인 방해로 이해해선 안 될 부분이다.”
_중국ㆍ북한에 대한 입장 차이에 따른 한일간 거리감도 적지 않다.
“한국은 북한이라는 불안요소를 제어하기 위해선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주는 요소로 중국의 존재감이 클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일본은 당장 북한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레버리지가 없기 때문에 존재감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고 북미ㆍ북일 국교 정상화가 본격 도마 위에 오르면 한국 입장에서도 일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또 동아시아의 미중 대립 속에서 한일 양국이 손을 잡아야 윈윈할 수 있다. 그러한 인식 속에 상대를 존중해야 하는데, 지금은 상대를 패싱하면서 서로 속으로 시원해 하는 감정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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