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선 ‘유사암’ 보험 과열경쟁 우려도 높아져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치매보험을 놓고 보험사들의 경쟁이 갈수록 과열되고 있다. 진단 확률이 비교적 높은 ‘경증치매’까지 보장하는 상품을 출시하면서 지급 금액은 높이고, 가입 문턱은 낮추자 보험사들의 미래 부담과 보험사기 등을 우려한 금융당국이 급기야 과열 경쟁에 급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2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치매보험을 판매 중인 보험사들은 경증치매에 ‘누적 가입한도’를 설정했거나, 설정을 준비 중이다. 앞서 지난 25일 메리츠화재가 업계 누적 가입한도를 3,000만원으로 설정했다고 밝혔고, 다른 보험사들도 조만간 누적 가입한도를 설정해 늦어도 4월 중 시행하기로 했다.
업계 누적 가입한도란 상품 가입 전에 이미 다른 보험사에 동일한 담보의 상품을 가입했을 경우, 수령할 수 있는 총 보험금에 한계를 두는 것이다.
보험사들의 이런 움직임은 치매보험 과잉 경쟁을 우려한 금융당국이 개입한 결과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0일 각 보험사에 ‘치매보험 상품 운영 시 유의사항 안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서 당국은 △경증치매에 대해 일시 정액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은 리스크가 크고 △타사 상품과 동시에 가입할 때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보험사기의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특정 가입자가 여러 회사 치매보험 상품에 동시 가입한 후 치매 진단을 받으면 이론적으로 진단금이 수억원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보험사들이 이처럼 공격적인 혜택을 내걸고 나선 것은 치매보험의 뜨거운 인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해 치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늘어난 데다 영업 현장에서 고객유치 경쟁이 벌어지자, 보험사들은 진단금과 보장기간을 확대하고 가입조건은 완화하는 등 다투어 차별화를 시도했다. 최근 보험사들은 최대 1,000만~2,000만원에 이르는 경증치매 진단금을 약속하거나, 보장 만기를 100세까지 늘리거나, 가입 가능 연령을 70세까지 확대하고 질병 이력이 있는 가입자도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품들은 동시에 도덕적 해이 우려도 키우고 있다. 현재 치매 진단을 받는 환자 대부분은 경증치매 환자다. 특히 ‘경도’ 치매 환자의 경우 외관상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고, 사람이나 장소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보험가입자나 의사가 마음만 먹으면 거짓 진단을 할 여지도 있어 보험금 지급을 놓고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보험사들은 단층촬영 결과 등 치매 진단의 명백한 근거를 요구하거나, 치매 진단 의사의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치매는 완치가 없고 지속적으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큰 진단비 자체를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라면서도 “보험금 지급이 늘면 당연히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되므로 모럴 해저드를 방지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치매보험에 이어 최근에는 ‘유사암보험’을 둘러싼 경쟁에도 우려의 시선이 높아지고 있다. 갑상선암, 제자리암, 경계성 종양 등 치료비가 비교적 소액이고 완치 가능성도 높은 암을 업계에서 유사암으로 통칭하는데, 보험사들이 진단금을 2,000만원대까지 경쟁적으로 높이고 보험 가입 조건은 완화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나선 이상 치매보험은 조정기로 돌입하게 될 텐데, 유사암은 아직 업계는 물론 당국의 움직임도 없어 새로운 전쟁터로 떠오르는 형국”이라고 우려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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