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北대사관 습격 후 FBI 접촉 시인… 美, 북핵협상 결렬 땐 ‘北 정권교체 카드’ 이용할 수도
해외 탈북자들의 반북 단체인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과 미국 정부 사이의 ‘비밀 커넥션’이 미국의 북한 정책에 주요 변수로 등장할 조짐이다. 미 국무부 일일 브리핑에 핵심 이슈로 떠오른 데 이어, 워싱턴포스트(WP)등이 이 단체와 미국 연방수사국(FBI) 사이의 커넥션을 집중 조명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북미 협상 국면 유지를 위해 국무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북핵 협상이 결렬되고 북미간 갈등이 고조될 경우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축출을 위해 후안 과이도를 내세운 것처럼 미국이 ‘자유조선’을 북한 정권 교체의 상징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6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일일 브리핑에서 미국 언론 및 주요 외신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보다 자유조선이 배후로 드러난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침입 사건에 질의가 쏟아졌다. 이 사건에 미국 정부가 개입했는지 여부와 개입했다면 무슨 의도였느냐는 질문에 로버트 팔라디노 대변인은 “미국 정부는 이번 사건과 어떤 연관성도 없다”고 주장했다.
국무부 부인에도 불구, 미국 언론과 외신은 자유조선과 미국의 연관성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다. 자유조선도 이날 ‘마드리드에 관한 팩트들’ 이라는 제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이번 일은) 습격(attack)이 아니었다. 마드리드 (북한) 대사관 내의 긴급한 상황에 대응(responded)했던 것뿐”이라며 대사관 침입을 시인했다. 이어 “FBI와 상호 비밀유지(에) 합의하고 막대한 잠재적 가치가 있는 특정 정보(certain information)를 공유했다. 해당 정보는 자발적으로, 그리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공유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 고등법원도 대사관에 침입한 이들은 한국과 미국, 멕시코 국적자를 포함해 10명으로, 이들 중 1명이 사건 뒤 FBI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WP도 자유조선과 FBI 사이에 협조관계가 존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이 북한 정권에 반대하는 해외 세력과 접촉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자유조선(당시 천리마민방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 형인 김정남이 2017년 3월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직후 큰 아들 김한솔을 제3국으로 탈출시키면서부터 미국 정부와의 관계 형성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미 정보기관이 배후에 있을 것이란 추측은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확인되진 않았다. 국내 탈북민 단체 관계자는 “김한솔 피신 건을 계기로 미국이 ‘자유조선’을 협력 파트너로 여겼고, 이후 신뢰를 쌓으며 대북 정보수집 활동을 함께 도모할 정도의 관계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자유조선-FBI’ 커넥션에도 불구, 미국이 당분간 북한 김정은 정권과의 비핵화 협상 구도는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톱다운’ 방식 협상 타결에 기대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조선의 세력이 아직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의도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유조선’이 새로운 지렛대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단체가 김일성의 4대 종손, 즉 백두혈통인 김한솔을 옹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판 해외 임시정부를 자처한 자유조선 뒤에는 그 존재만으로 김정은 정권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김한솔이 있고, 미국이 김 위원장을 흔들기 위해서라도 자유조선에 호의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실제 적성국 독재자의 반대세력 후원은 미국의 오랜 외교전술 중 하나다. 당장 이번 사건이 베네수엘라 사태를 둔 미국 정부의 개입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기 위해 반(反) 마두로 세력 수장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뒤에서 움직여왔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자유조선은 김한솔을 끼고 반북 세력의 구심점이 되려 하고 있다”며 “여기에 미 정부의 재정적 후원까지 있다면, 김정은 정권으로선 그들 존재만으로도 매우 큰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스페인 판사가 북한 인권운동가인 아드리안 홍 창을 비롯해 신원이 확인된 모든 용의자가 미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미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워싱턴 외교가 관계자는 “FBI와의 공모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 스페인 요청을 어떻게 처리할 지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가늠할 주요 잣대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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