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이사 연임에 실패하면서 이른바 ‘펀드자본주의’의 위력을 제대로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회장 연임을 찬성한 표가 통과 기준(66%)에 불과 2% 못 미친 데는, 11.56% 지분을 보유한 ‘대형 펀드’ 국민연금의 존재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펀드자본주의를 둘러싼 찬반 논란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을 통해 펀드자본주의가 더 이상 현실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실체로 등장한 셈이다.
27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펀드자본주의는 G. L. 클라크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펀드가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 권력으로 등장한 20세기 후반 이후의 자본주의 특성을 가리킨다.
펀드가 경영에 참여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단순히 주식시장에서 매매를 통한 시세차익만 노리기보다, 투자한 기업의 경영에 참여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수익을 내려는 것이다.
애초 펀드자본주의는 주고 영ㆍ미계 국가 펀드들의 움직임을 지칭했다. 미국 최대 뮤추얼펀드인 피델리티가 실적부진을 이유로 카메라 및 필름의 제조사인 ‘이스트만 코닥’ 최고경영자를 주주총회 의결로 교체한 것이 벌써 26년 전인 1993년의 일이다.
국내에선 지난 2006년부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이끈 ‘한국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를 시작으로 펀드자본주의 움직임이 일었다. 장하성펀드는 태광산업 대표이사 해임 소송, 한솔제지 사외이사 선임 등 적극적인 행동으로 주목 받았다. 비슷한 시기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배당에만 신경 쓰고 장기성장을 도모하지 않는 기업에는 설비투자를 확대하도록 권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간 펀드자본주의가 인상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펀드자본주의가 다시 주목 받은 건 작년 7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투자자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활동에 방점을 찍는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 행보에 따라, 민간에서는 KCGI(일명 강성부펀드)를 필두로 자산운용사들도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펀드의 경영 개입을 무조건 반대하는 이는 많지 않다. 잘만 작동하면 기업의 투명성과 효율을 높여 주식시장 발전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경영 안정성이 위협받아 펀드자본주의를 무작정 반기기 어렵다. 반대편에선 “펀드들이 일시적인 수익을 위해 기업의 단기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 혈안이 될 경우 오히려 기업 가치를 떨어트릴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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