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일본 도쿄(東京)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한일갈등과 관련해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제의 예외라는 점을 실질적으로 인정한 반면,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체제의 근간과 관련한 문제라는 점에서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반응이 강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미야 교수는 지난 25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이 강제징용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련한 판결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국가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문제”라면서 “한국이 이러한 일본 입장을 감안해 대응책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바탕으로 한일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보다 활발한 정상간 소통을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_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갈등이 악화일로에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약 5개월 동안 한국 정부가 대응책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답을 찾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그나마 강제징용 피해자를 위한 재단설립과 기금조성이 해법으로 거론됐으나 위안부 화해ㆍ치유재단 해산 등의 전례가 있어 양측 정부 모두 수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_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가.
“재단 설립을 가정할 경우, 한국 정부가 이번엔 해산 등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일본 정부는 관련 기업이 기금을 내는 것을 막지 않는 정도의 타협은 가능하다고 본다. 또 일본이 주장하는 중재위원회 회부나 국제재판소(ICJ) 제소도 대안이 될 수 있다. ICJ 구성상 개발도상국 출신도 많고, 인권 규범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어느 한 나라에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다면, ICJ를 통해 해결하고 결과를 수용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물론 가장 최선은 양국 간 해결이다.”
_양국이 한일갈등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도 있는데.
“양국에 그런 측면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얼만큼의 효과를 거두는지 냉정히 들여다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 국민 중에 아베 총리가 한국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국 국민들도 문 대통령이 일본에 강경하다고 해서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태도엔 큰 변화가 없지만,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태도가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다소 우려된다. 한류를 좋아하는 젊은층이 아닌 중장년층을 만나면 ‘한국은 왜 자꾸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 순진한 인식과 논리가 오히려 한일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_양국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보다 적극 나설 때가 되지 않았는가.
“가장 소통이 되지 않는 레벨이 양국 지도자들이다. 몇 번의 전화통화로 의견을 나눌 게 아니라 통역만 대동한 채 단둘이 만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본 적이 거의 없다. 양국 지도자들도 상대를 믿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설령 그렇더라도 자주 만남으로써 상대의 진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선입견으로 양국간 문제를 풀어선 안 된다.”
_지난달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양국이 북한문제와 관련해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위축됐다.
“그런 점이 없지 않다. 북미회담 이후 한국 일각에서 일본 음모론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일본 입장에선 자국 안보를 위해 미국에 비핵화에 대한 속도 조절을 요청할 수 있다. 만약 일본의 움직임이 못마땅하다면, 한국 측이 일본과 북한문제에 대해 대화 진행상황을 공유하거나 사전조율로 상호 이해를 구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결과만 보고 일본이 방해해서 결렬됐다는 식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
_한국에서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의 압류자산이 현금화할 경우 일본의 대항조치는 불가피한가.
“그렇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도 한국 정부가 먼저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피해자 측 변호인단이 쉽게 수용하지 않겠지만 정부가 이들을 설득, 협상의 시간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한 노력 여부 따라 일본의 대항조치 수위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에선 한국 측이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데에 대한 불만이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한국 측의 물밑 노력들이 전달된다면 일본 측도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항조치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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