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버닝썬 사건 수사하느라 바쁜 서울경찰청 마약수사계에다 첩보를 구걸해야 할 정도예요.”
27일 서울 시내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A경정이 요즘 ‘속앓이’가 보통 아니라며 털어놓은 푸념이다. A경정이 앓아대는 이유는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 때문이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이 코 앞에 닥친 상황에서 경찰 유착 의혹이 가미된 ‘버닝썬 스캔들’이 터지자, 경찰청은 석 달간 진행될 마약과의 전쟁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전국 마약 수사관 1,063명은 물론, 형사ㆍ여성청소년ㆍ사이버ㆍ외사 등 다른 분야 수사인력까지 모두 투입시켰다.
하지만 A경정이 속한 경찰서엔 마약전담팀이 따로 없다. 경찰서마다 관할 지역 특성 등을 고려해 팀을 만들다 보니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 중 마약전담팀이 있는 곳은 10곳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살인, 강도 등을 다루는 강력계 형사들이 마약 사건까지 ‘겸업’하는 구조다. A경정은 “전담 인력이 없는데 갑자기 실적을 내라 하니 다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쫓아다닌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수사관은 “정보원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바탕으로 핵심 정보를 빼내야 하는데 수년간 마약수사를 놓고 있었다 보니 소소한 정보 하나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랴부랴 이곳 저곳 탐문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 또한 한계가 보인다는 지적이다.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마약 수사가 이뤄질 때는 첩보를 주던 정보원들도 숨어들기 마련이다. 소위 ‘약쟁이’라 불리는 정보원을 통해 마약유통 조직을 파고 들어 윗선을 일망타진하는 식의 전통적 수사기법이 신통치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보원을 타고 들어가는 수사 방식은 범죄자와 직접 접촉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 수사 기밀이 노출될 수도 있어 당국에서도 권하지 않는 방식이다. 또 요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마약 유통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을 잡으려면 정교한 추적 기술이 필요하다. 수사가 잘 진행되다가도 해외에 서버가 있어 추적이 막히거나, 제일 아래 단계의 거래 당사자 몇몇만 잡고 끝나는, ‘단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왕 치러야 할 마약과의 전쟁이라면 수사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년간 마약 범죄 검거인원은 20% 이상(2014년 9,984명→2018년 1만2,613명) 늘었지만, 전담 수사 인력 규모는 제자리인데다 유통망은 점점 지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버닝썬 스캔들로 GHB(일명 ‘물뽕’) 같은 신종 마약의 수요와 공급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만큼, 경찰은 전담 인력을 늘려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오직 마약 범죄만 다루는 전담 인력은 2018년 기준 265명이다.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는 지난 2017년 마약전담인력을 최대 692명까지 늘려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수사인력을 ‘인해전술’식으로 투입하는 단기 기획수사나 마약수사인력의 비대화만이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은 마약청(DEA)과 같은 강력한 수사조직을 만들고도 마약과의 전쟁에서 결국 졌다”면서 “공급책을 때려잡는 식의 단속보다는 점점 대중화되는 마약 수요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발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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