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배 의원 “황제 경영” 비판에 찬성파 “국회로 돌아가라” 언성 높여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주주들 간의 삿대질과 고성이 오갔다. 불과 2.6%포인트의 지분 차이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됐을 정도로 안건마다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주주들의 성토 발언이 이어지면서 오전 9시 11분쯤 시작한 주총은 마무리되기까지 1시간 남짓 걸렸다. 건물 밖에선 “범법자 조양호를 구속하라”는 내용의 피켓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주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조 회장은 우기홍 부사장(의장)이 대신 읽은 인사말을 통해 “경영체질 개선을 통해 올해 영업이익 1조원(지난해 6,924억원)을 달성, 100년 기업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대한항공은 이날 주총에서 △2018년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이사 선임(사내이사 조양호, 사외이사 박남규)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을 안건으로 올렸다.
첫 번째 안건이 상정될 때부터 주총은 시끄러워졌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재무제표 승인 건에 앞서 발언을 통해 “땅콩회항 사건부터 지금까지 조 회장 일가의 황제 경영으로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참여연대 등 주주들의 대리인 자격으로 주총에 참석했다. 또 다른 주주는 “조 회장 일가가 기내 면세품 납품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겨 대한항공에 196억원의 손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이사회가 무슨 역할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들 발언에 대해 조 회장을 찬성하는 주주들은 언성을 높이며 “채 의원은 국회로 돌아가라”고 받아쳤다. “안건에 관련한 내용만 발언하라”는 항의도 이어졌다. 한 주주는 “지난해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회사가 영업이익을 냈다”며 “오는 6월 대한항공 주관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의 성공적 개최 등을 위해서도 조 회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매출(12조6,555억원)을 기록했다.
오전 9시55분쯤, 우 부사장이 “외국인 대주주 등 사전에 확보한 위임장 의결권을 확인한 결과 참석주주 중 찬성 64.1%로 의결정족수 3분의 2(66.7%)에 미치지 못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건은 부결됐다”고 선언하자 주총장에선 환호와 한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일부 주주들은 “위임받아온 주주권은 집계되지도 않았는데 부결을 선포하는 건 의사진행원칙 위반”이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이에 대해 우 부사장은 “다른 주주들이 몇백만 주를 갖고 왔어도 결과에 변동이 없어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주식은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보유하고 있고,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11.56%, 외국인 주주가 20.50%를 각각 갖고 있다. 조 회장 측은 30% 가량의 우호 지분을 확보했지만, 2.6%포인트가 부족해 결국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앞서 ISS,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이사 연임안에 반대를 권고했고, 국민연금도 주총 전날인 26일 반대표를 던지기로 한 게 결정타였다.
채 의원은 주총 표결 직후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주의 힘으로 불법행위를 한 재벌 총수가 경영진에서 퇴출되는 첫 선례가 됐다”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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