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과 달리 미국이 아닌 멕시코가 ‘자유의 땅’인 시기가 있었다. 미국에 노예 제도가 남아 있던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 노예주에 살던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당시 실제로 자유를 찾아 멕시코로 향한 흑인들도 있었다. 멕시코 북부 코아훌리아주(州) 나시미엔토에 정착한, 이른바 마스코고스(mascogos)로 불리는 이들이다. 그러나 여섯 세대 동안 지속돼 온 그들의 공동체가 이제 붕괴 위기에 놓였다. 선조들이 ‘노예의 삶’을 벗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했던 미국 땅으로 후손들이 유턴하는 기이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름아닌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멕시코인 수십만명이 매년 미국에서 임시 취업 비자를 받고 있지만, 마스코고스의 미국 행에는 좀 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다”면서 이들의 사연을 최근 소개했다. ‘조상이 노예로 살았던 나라에 자발적으로 돌아갈 때의 심경은 어떨까’라는, 다른 이민자 행렬과는 무관한 색다른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는 얘기다.
마스코고스의 뿌리는 17~18세기 미국 캘리포니아주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던 노예들이다. 당시 스페인 영토였던 플로리다로 탈출한 흑인들은 이곳의 정착민인 세미놀 부족과 함께 자유인으로 살며 ‘마스코고스’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그러나 1821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플로리다를 점령한 뒤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9년 후 인디언 강제이주 시행 등으로 이들은 다시 ‘노예제’의 사슬에 묶일 위험에 처했고, 1850년 7월 60가구(309명)가 멕시코로 넘어갔다. 피부색이 달라 멕시코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당했지만, 그들은 과거 선조들이 쌓은 나름의 전통을 유지하며 지역공동체를 형성했다.

하지만 최근 멕시코 북부지역을 강타한 오랜 가뭄은 그들이 150년 넘게 지낸 삶의 터전을 떠나도록 했다. 농토는 말라붙었고, 마을의 가축도 절반 이상 세상을 떠났다. 멕시코의 공장은 취업하기엔 너무 멀었고, 임금도 하루 몇 달러에 불과했다. 생존을 위해선 옛 조상들이 탈출했던 ‘북쪽’으로 가야 했다. 지난주 미 텍사스주의 목장 청소부로 고용된 후아나 바스케스(50)는 “미국에선 시간당 10달러를 벌 것 같다”며 “일하기를 원하면 국경을 건너야만 한다”고 말했다.
선조들과 미국의 ‘악연’에 대해 그는 “슬픈 일이지만, 이미 끝난 문제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다”고 잘라 말했다. 1999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미국으로 건너가 일했다는 세르반도 세르반테스도 “미국행 선택은 도덕적 딜레마가 아니라, 순전히 경제적인 것”이라며 “아버지(과거의 미국)의 죄 때문에 아들(현재의 미국)을 비난할 순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WP는 마스코고스의 역사엔 ‘인구 이동’의 장기적 전망이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에서 이민 문제를 둘러싼 전례 없는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랜 시간에 걸쳐 국경을 넘나들며 떠돌았던 공동체가 급기야 원점으로 회귀하는 현상마저 발생했다는 뜻이다. 뉴욕시립대 연구원인 루시우 길은 “상당수의 마스코고스는 이제 미국에 대해 ‘우리 조상을 노예로 삼은 곳’이라고 바라보지 않는다. 자유인으로서 탈출할 수도, 또 자유롭게 돌아갈 수도 있는 곳으로 여긴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들은 완전한 ‘미국 정착’을 꿈꾸는 건 아니다. 바스케스는 “자식들에게 계속해서 이곳(나시미엔토)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미국에서 일하더라도 네 집은 여기라고 이야기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지역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마을 인구의 절반 이상은 이미 미국으로 떠난 상태다. 1980년대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코리나 해링턴(45)은 “나는 나시미엔토를 사랑하지만, 현재 이곳엔 남은 게 정말로 많지 않다는 게 진실”이라며 “여기서 삶을 살아가는 건 더 이상 쉽지 않게 됐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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