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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비토… 조양호 회장 27일 ‘운명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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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비토… 조양호 회장 27일 ‘운명의 날’

입력
2019.03.26 22:06
수정
2019.03.26 23:2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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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탁자책임위원회서 표결 끝에 대한항공 이사 재선임 ‘반대’ 결론 

 ‘캐스팅 보트’ 주총서 행사… 기업 총수 경영권에 직접 제동 초유 사태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열린 국민연금·사학연금·공무원연금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이사연임 반대 주주권 행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과 대한항공조종사노조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열린 국민연금·사학연금·공무원연금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이사연임 반대 주주권 행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과 대한항공조종사노조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이 27일 열리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지난해 7월 도입된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지침)의 후속조치이자, 국민들의 공분을 산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 행위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장인 셈이다. 대한항공의 2대 주주로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표 대결 결과에 따라 조 회장이 이사직을 박탈당할 가능성도 높아겼다. 국민연금이 기업 총수의 경영권에 직접적인 제동을 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지 주목된다.

26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탁자책임위) 주주권행사분과는 대한항공과 SK의 정기 주총 안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하고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수탁자책임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표결한 결과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 반대 6표, 찬성 4표로 조 회장이 사내 이사로서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또 최태원 SK 회장의 이사 선임 건에 대해서도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이력을 이유로 반대를 결정했다.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활동에 관한 지침 30조에 따르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 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이사 후보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있다.

일부 위원들은 회사에 총 274억원의 손실을 끼쳐 배임ㆍ횡령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조 회장에 대한 1심 재판 결과가 나온 뒤 결정해야 한다고 맞섰으나, 객관적인 증거가 있을 때는 기소 단계일지라도 반대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조 회장 이사 재선임 반대 의견을 낸 한 위원은 “대한항공이 조 회장의 자녀들이 지분을 많이 가진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은 사건도 결정에 참고가 됐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도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고, 올해 1월 열린 수탁자책임위에서도 7대 2로 이사연임 반대의견이 다수였던 만큼 이날 국민연금의 결정은 예고된 결과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이날 결론을 내릴 때까지 진통은 상당했다. 대한항공 측은 이상훈(민주노총 추천) 김경율(참여연대 추천) 위원이 대한항공 주식을 보유 또는 위임 받은 주주여서 ‘이해관계 직무의 회피 의무’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내부 검토를 거쳐 소액주주 활동을 위해 대한항공 주식 1주를 가지고 있던 이 위원은 회의에서 배제하고, 주식 2주를 보유한 참여연대로부터 의결권을 위임 받은 대리인인 김 위원의 자격은 유지했다. 수탁자책임위는 주주권행사분과에서 찬성과 반대가 4대 4로 팽팽하자 책임투자분과의 일부 위원 2명을 참석시킨 전체 회의에서 관련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국민연금의 공식적인 반대 의사 표명으로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대한항공의 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통과된다. 현재 조 회장 측 우호지분은 33.35%로, 의결권 출석률을 100%로 가정하면 약 34%의 찬성표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땅콩회항’, ‘물컵 갑질’ 등 조 회장 오너 일가의 일탈에 더해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차례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 강조하면서 어느 때보다 반대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지분 11.56%를 가진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명시한 만큼 소액주주들(56%)의 선택에 따라 조 회장의 거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들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조 회장 재선임에 반대를 권유하는 활동을 해왔다. 지분은 크지 않으나 플로리다연금(SBA of Florida)과 캐나다연금(CPPIB), BCI(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 3곳의 외국 기관투자가들 역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한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에 대해 “장기적 주주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고, 사법부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법적 가치마저 무시하고 내려진 결정”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표 대결에서 진다면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거머쥔 지 20년 만에 강제로 밀려나게 된다. 다만 국민연금이 올해 열린 신세계, 현대건설,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주총에서 회사 측 안건에 반대했으나 모두 표 대결에서 밀렸던 만큼 대한항공 주총 역시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윤식 강원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주주와 계열사 지분율이 높은 국내 기업의 소유 구조 상 국민연금의 결정이 향배를 가르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다만 잘못된 방향의 안건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경각심을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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