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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한승원이 걸었고…이청준이 먼 길 떠난 곳

입력
2019.03.27 01:06
수정
2019.03.27 09:5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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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소읍탐방]장흥 회진면…문인의 자취 따라 따스한 봄나들이

남도 끝자락, 장흥 회진면 진목리 이청준의 묘소인 ‘이청준 문학자리’. 광주 가는 아들 주려고 게를 잡던 갯벌은 지금 드넓은 ‘갯나들’로 변해 보리와 사료작물로 초록이 물결친다. 장흥=최흥수기자
남도 끝자락, 장흥 회진면 진목리 이청준의 묘소인 ‘이청준 문학자리’. 광주 가는 아들 주려고 게를 잡던 갯벌은 지금 드넓은 ‘갯나들’로 변해 보리와 사료작물로 초록이 물결친다. 장흥=최흥수기자

정남진은 없다. 요즘에야 강릉 정동진만큼 제법 익숙해졌지만, 장흥 어디가 정남진인지는 콕 찍어 말하기 어렵다. 광화문과 경도가 같은 한반도의 가장 남쪽 땅, 그러니까 정남진은 다분히 서울 사람들을 의식한 명칭이다. 2005년 남도 끝자락 외진 곳 장흥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고안해 ‘정남진물축제’ ‘정남진전망대’ ‘정남진 편백숲우드랜드’ 등 관광 브랜드로 주로 사용된다. 그래도 장흥에서 정남진을 꼽으라면 가장 남쪽 회진면이다. 눈에 번쩍 띄는 관광지는 없지만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따라 가다 한적한 바닷가에 자리를 펴면 어디나 봄날의 소풍이다.

정남진 장흥 회진면의 한승원ㆍ이청준 문학 자리와 천관산 자락 주요 관광지. 그래픽=송정근 기자
정남진 장흥 회진면의 한승원ㆍ이청준 문학 자리와 천관산 자락 주요 관광지. 그래픽=송정근 기자

◇정남진 이전에 회령포, 백의종군 이순신의 부활

득량만 끄트머리에서 바닷물이 천관산 자락으로 파고드는 작은 포구, 회진의 옛 이름은 회령포다. 조선시대에는 종4품 무관인 수군만호(水軍萬戶)가 다스리던 해군기지가 있었다. 언덕 위에 포구보다 작고 아담한 석성, 회령진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성종 21년(1490)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쌓았다. 전쟁 시에는 수군의 집결 장소로, 평시에는 군량과 군기를 쌓아두는 보급 기지였다. 전체 616m의 성벽 중 현재 북문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일부만 복원해 놓았다. 성곽에서 내려다보면 남쪽으로는 득량만의 쪽빛 바다가 반짝이고, 북쪽으로는 천관산이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포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마을 풍경이 정겹고도 푸근하다.

이순신이 명량해전 출정식을 한 회진면 회령진성. 건너편이 파손된 12척의 판옥선을 수리한 덕도(덕산마을)이다.
이순신이 명량해전 출정식을 한 회진면 회령진성. 건너편이 파손된 12척의 판옥선을 수리한 덕도(덕산마을)이다.
회령진성은 북문 터 일부 구간만 공원처럼 복원한 상태다.
회령진성은 북문 터 일부 구간만 공원처럼 복원한 상태다.
이순신의 출정식을 알리는 회령진성의 조형물.
이순신의 출정식을 알리는 회령진성의 조형물.
회령진성 북측으로는 천관산의 자태가 웅장하다. 정상부에 기암괴석이 있어 천자의 면류관으로 부른다.
회령진성 북측으로는 천관산의 자태가 웅장하다. 정상부에 기암괴석이 있어 천자의 면류관으로 부른다.

회령포는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삼군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후 공식 취임한 곳이다. 원균이 거제 칠천량해전에서 패한 후 당시 경상우수사 배설이 부서진 배 12척을 이끌고 이곳으로 피신했다. 마을에 ‘고집(庫集)들’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배를 숨겨 놓은 곳이라는 뜻이다. 회령포에서 진영을 재정비한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10배 이상의 적군을 대파하며 정유재란의 전세를 뒤집고, 일본 수군의 서해 진출을 막는다. 성곽 아래 공원에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의 활약을 기록해 놓았고, 군사 요충지로서 회령포의 역사적 의의가 널리 퍼져 나가길 바라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회령진성이 있는 회진면 소재지 뒤편으로 천관산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회령진성이 있는 회진면 소재지 뒤편으로 천관산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고갯길에 정겨운 할미꽃…한승원 생가 가는 길

회진은 문인의 고향이다. 소설가 한강의 부친으로 더 잘 알려진 작가 한승원(1939년생)과 ‘당신들의 천국’ ‘눈길’ 등의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한승원이 태어난 곳은 회진면 소재지에서 북측, 이청준의 생가는 남측이다. ‘한승원 문학길’ ‘이청준 문학길’이라 이름 붙인 걷기 길이 있지만,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짧지 않은 거리다. 천천히 차를 몰다 한적한 곳에서 쉬어 가도 문학의 향기를 음미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회진에서 한승원 생가가 있는 신상마을로 가는 고갯길, 한재공원에 할미꽃이 곱게 피었다.
회진에서 한승원 생가가 있는 신상마을로 가는 고갯길, 한재공원에 할미꽃이 곱게 피었다.
20여년 전 산불이 난 이듬해 할미꽃이 무더기로 올라오자 아예 할미꽃 공원으로 가꿨다.
20여년 전 산불이 난 이듬해 할미꽃이 무더기로 올라오자 아예 할미꽃 공원으로 가꿨다.

한승원 생가는 회령진성에서 바라보이는 덕산마을에서 고개를 하나 넘어 신상마을이다. 두 마을을 잇는 한재 고갯마루에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시설을 잔뜩 해 놓고 돈 받는 공원이 아니라 주민들이 아픈 다리 쉬어 가는 동네 공원이다. 고개 정상에 ‘한재’를 추억하는 한승원의 글이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한식 지내러 왔다가 한재고개 언덕지 풀밭에 엉덩이 붙이고 앉는다. 고살바위 주위로 진달래꽃이 불처럼 타오른다. 동무들과 자치기하고 씨름하다가 회진 뒷산에 핏빛 노을이 지면 풍경 뎅그렁거리는 소 끌고 집으로 돌아가 팥죽 먹던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나 벌써 강 하구에 흘러와 있다.”

요즘 한재공원은 할미꽃공원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여년 전 산불이 난 후 이듬해 봄에 할미꽃이 잔뜩 피어 났다. 이를 본 주민들이 아예 주변 잡목을 제거하고 할미꽃을 더 심어 가꿨다. 손톱만한 봄 꽃에 비하면 할미꽃은 제법 큰 편이지만, 그 고운 자체를 보려면 여전히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눈을 맞춰야 한다. 고개 숙인 채 솜털이 보송보송한 진보랏빛 꽃잎이 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회진면 신상마을의 한승원 생가. 현재는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회진면 신상마을의 한승원 생가. 현재는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한승원 생가 뒤뜰의 옹달샘. 한승원이 이 물을 마시고 위장병이 나았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한승원 생가 뒤뜰의 옹달샘. 한승원이 이 물을 마시고 위장병이 나았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신상마을에 들어서면 골목길에 ‘한승원 생가’ 표지판이 붙어 있다. 현재는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어 방 안은 들여다 볼 수 없다. 자그만 텃밭엔 자운영과 머위가 푸릇푸릇하고, 마당에는 쏟아지는 봄볕이 따스하다. 단층 슬레이트 지붕 뒤로는 대숲이 아늑하고, 뒤뜰로 돌아가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옹달샘이 있다. 위장병을 앓던 한승원이 고향에 와서 이 물을 마시고 씻은 듯이 나았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신상마을도 볕 좋은 산자락이지만, 마을 안에 축사와 소규모 공장이 섞여 있어 걷기 길 코스로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대신 마을에서 바다 쪽으로 언덕 하나를 넘으면 ‘해산한승원문학현장비’가 있다. 양식 시설과 자그만 배들이 둥둥 떠 있는 방파제 초입에 놓았는데, 파도에 쓸려 온 것처럼 보인다. “그 바다에는 천만 년의 신화가 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장편소설 ‘해일’의 한 대목 아래, 한승원을 자랑스러워하는 주민의 마음이 함께 새겨져 있다. “우리 신상이 낳은 큰 작가 한승원님…이 표석을 세워 오래 기리고자 합니다.”

신상마을에서 북측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방파제 끝에 정남진전망대가 우뚝 서 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승원은 주말이면 장흥에서 이 길을 거쳐 집까지 걸어 왔다고 한다. 한번은 그의 부인이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함께 걸어 보자 제안했는데 모두 손사래를 쳤단다. 무려 100리 길이었으니. 1997년 낙향한 한승원은 생가에서 약 30km 떨어진 안양면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을 짓고 살고 있다.

신상마을에서 언덕 너머 득량만 바닷가의 ‘한승원현장문학비’. 파도에 떠 내려 온 것처럼 ‘현장감’을 살렸다.
신상마을에서 언덕 너머 득량만 바닷가의 ‘한승원현장문학비’. 파도에 떠 내려 온 것처럼 ‘현장감’을 살렸다.

◇따스한 봄 소풍처럼…‘이청준 문학자리’

회진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이청준 문학길’의 들머리 선학동마을이다.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산자락에 안긴 모습이 한눈에도 포근하다. 선학동의 행정지명은 회진리지만, 임권택 감독이 100번째 작품 ‘천년학(2007)’을 찍은 후부터는 선학동으로 부른다. 마을 초입 제방에 주막으로 사용했던 촬영 세트가 남아 있다. ‘천년학’은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흥행은 거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청준과 선학동은 주민들에게 자랑으로 남았다. 선학동마을은 봄이면 유채꽃으로, 여름이면 메밀꽃으로 뒤덮여 선경을 연출한다. 올해 유채는 파종 시기를 조절해 4월말은 돼야 노란 꽃 물결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한재고개에서 본 선학동마을. 학의 날개에 포근히 안긴 형상이다.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화한 임권택의 ‘천년학’을 찍은 곳이다.
한재고개에서 본 선학동마을. 학의 날개에 포근히 안긴 형상이다.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화한 임권택의 ‘천년학’을 찍은 곳이다.
선학동 마을 제방에 영화 ‘천년학’ 세트가 남아 있다.
선학동 마을 제방에 영화 ‘천년학’ 세트가 남아 있다.

선학동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이청준 생가가 있는 진목마을이다. 생가는 방 3개와 툇마루, 부엌을 갖춘 일자형 기와집으로 당시로는 제법 번듯한 가옥이었지만, 이청준이 광주일고에 다닐 때 다른 사람 손에 넘어 갔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 날, 아들이 사실을 알면 마음 아파할까 봐 어머니는 집주인에게 부탁해 팔린 집을 빌려 하룻밤 아들과 보낸 후, 새벽 길을 걸어 인근 대덕터미널까지 배웅했다. 그의 소설 ‘눈길’의 배경이 된 실화다. 아무 장식 없는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서로를 아끼는 모자의 애틋함이 전해지는 듯하다. 생가는 현재 장흥군에서 사들여 관리하고 있다.

동네 어르신마다 ‘공부를 하려면 청준이만큼 하라’할 정도로 뛰어났던 그는 당시 군에서 한두 명도 가기 힘들다는 광주서중학교에 합격한다. 어린 아들을 사촌누나 집에 맡기면서 빈손으로 보낼 수 없었던 어머니는 마을 앞 갯가에서 게를 잡아 들려 보냈는데, 광주에 도착하니 썩고 냄새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상처가 컸던 듯 훗날 이청준은 자신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단다. 유명해지더라도 절대 군림하는 사람은 되지 않겠노라 마음먹은 것도 그때였다.

진목마을의 이청준 생가. 작가와 어머니의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진목마을의 이청준 생가. 작가와 어머니의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진목마을 인근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신이 직접 터를 잡은 이청준의 묘 ‘이청준 문학자리’.
진목마을 인근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신이 직접 터를 잡은 이청준의 묘 ‘이청준 문학자리’.

그의 묘는 진목마을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이청준 문학자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묘소 바로 뒤에 축사가 있어 여러모로 거슬린다. 영면하기 이태 전 그는 묏자리를 보면서 “사람들 먹고 살라고 애쓰는디, 나 때문에 폐가 될까 두렵네”라며 행여 축사를 옮기라 요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냄새 나고 더러운 것도 기꺼이 끌어안은 작가의 배려에 오히려 부끄러워진다.

이청준 문학자리에는 그의 부모를 모신 봉분과 장차 부인이 쉴 자리가 함께 마련돼 있다. 바로 앞 ‘갯나들’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싸 보낼 게를 잡던 곳이었다. 드넓은 들판으로 변한 지금은 청보리가 봄바람에 살랑거린다. 들판 너머 바다에는 은빛 물 비늘이 반짝인다. “자네들 내가 간 뒤라도 혹시 다른 자리 알아보지 말고, 내가 살던 집 옆, 저어기 바다가 멀리 바라보이는 이 자리를 영원히 묵을 곳으로 잡아주게나.” 이청준이 머나먼 소풍을 떠난 그곳에서 잠시 엉덩이 붙이고 따스한 봄 소풍을 즐겨도 좋겠다.

지인과 동료 문인들이 세운 비석에 ‘해변아리랑’에서 발췌한 글귀를 새겨 놓았다.
지인과 동료 문인들이 세운 비석에 ‘해변아리랑’에서 발췌한 글귀를 새겨 놓았다.

◇장흥 여행 정보

▦서울에서 장흥 회진까지는 대략 400km 거리다. 정체가 없어도 5시간은 넘게 걸린다. 서울 강남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장흥까지 하루 7회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장흥읍내에서 회진면까지는 시내버스(농어촌버스)를 이용해야 하지만 차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나주역(혹은 광주송정역)까지 고속철로 이동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이다. ▦장흥은 언제나 먹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지역 특산물인 쇠고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익혀서 함께 먹는 ‘장흥삼합’은 대표 음식이다. 요즘은 회진면 삭금 앞바다에서 잡히는 주꾸미가 살이 올랐다. 미나리와 냉이를 듬뿍 넣어 국물 맛을 낸 주꾸미 샤브샤브도 제철 음식이다.

쇠고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함께 먹는 장흥삼합.
쇠고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함께 먹는 장흥삼합.
회진면 삭금 포구에서 잡은 알이 꽉 찬 주꾸미.
회진면 삭금 포구에서 잡은 알이 꽉 찬 주꾸미.

장흥=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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