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에 K리그2 캐스터 복귀… 감칠맛 코멘트에 시청자들 반색 
K리그 자체중계를 통해 중계석에 복귀한 송재익 스포츠캐스터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1970년 MBC 입사한 뒤 40년 가까이 국내외 굵직한 스포츠이벤트 중계를 도맡으며 ‘중계의 달인’으로 꼽히는 송재익(77) 캐스터는 요즘 뒤늦게 인생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은퇴 10년여 만에 프로축구 K리그2(2부 리그) 자체중계 캐스터로 축구 현장에 복귀한 그는 이를 계기로 전국을 누빌 수 있는 ‘축구여행자’의 삶을 다시 살아가게 됐다. 그는 자신이 ‘덕을 봐 온’ 축구현장을 누비며 축구팬들에게 향수를 안길 수 있게 된 지금의 삶은 큰 행운이자 행복이란다.

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난 송재익 캐스터는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어쩜 이렇게 운이 좋을 수 있겠느냐”며 축구현장 복귀 소감을 전했다. 그는 “얼마나 중계를 할지 모르겠지만, 축구계가 다시 살아나고, 야구 인기를 넘어서는 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만한 행복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미디어환경이 급변한 10여 년의 세월을 건너 뛰고 중계마이크를 다시 잡는다는 건 그에게도 크나큰 도전이었다. “말 한 번 잘못하면 끝장인데, 무슨 망신 당하려고 나서느냐”는 아내 말이 그의 가슴을 푹 찔렀단다. 그는 “얼굴 가리고 그리는 낙서(댓글)가 많은 세상이라 나도 무서운 건 매한가지였다”며 웃었다.

K리그 중계를 통해 축구 현장으로 돌아온 송재익 캐스터.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럼에도 77세 나이에 K리그 현장 중계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데는 약 3달 전쯤 프로축구연맹 사무국에서 접한 그들의 ‘자체반성’ 메시지가 한 몫 했다. 그는 “K리그 사무국에서 ‘관중ㆍ시청률ㆍ재미 부족’이란 메시지를 봤다”면서, K리그가 절박한 심경으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곤 힘을 보태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연맹 측이 ‘묻지마 섭외’를 한 게 아니라,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중ㆍ장년층 축구팬 선호도가 높았다며 근거를 대며 그를 설득한 점도 수락 요인 가운데 하나다. “내가 믿는 구석은 하나밖에 없어요. 옛 축구팬들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죠. 시청자들이 옛날처럼 내 중계를 보고 공감해 준다면 그만큼 고마운 일이 또 있겠어요?”

송재익 캐스터 인기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연맹에 따르면 개막 이후 송재익 캐스터가 중계한 3경기(1~3라운드) 평균 동시접속자 수는 9,670명으로, 올해 K리그2 모든 경기 동시접속자 평균(7,316명)을 크게 웃돈다. 최근 아산-부천전 중계 때 골키퍼의 분홍색 유니폼을 경기장 근처에 핀 매화에 빗대거나 ‘물수제비 헤딩을 했다’ ‘포도주가 잘 익는 온도(17도)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의 기량도 잘 익었으면 좋겠다’ 같은 ‘감칠맛 코멘트’도 여전하다. 축구팬들은 댓글에 ‘추억여행을 온 것 같다’ ‘듣기 편하다’며 호응했다.

그는 중계 때마다 툭 툭 튀어나오는 철학적 표현 비결로 여행을 꼽았다. K리그 중계 때마다 소형 캠핑카를 몰고 서해 보령앞바다, 지리산자락 등을 여행하며 사람 사는 세상을 차분히 들여다봤다고 한다. 은퇴 전부터 이어오다 한동안 접어뒀던 축구유랑을 재개한 셈이다. 남편의 중계석 복귀를 걱정했던 아내는 어느새 ‘송재익의 축구여행’ 고정 멤버가 됐다. 송 캐스터는 “일주일에 한두 경기씩 중계하니, 광양, 광주, 아산 등을 목적지로 여행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연맹에서 받은 중계료가 둘의 여행 경비론 충분하다”면서도 “앞으로 K리그1(1부 리그)도 맡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다양한 도시를 다니며 재미있게 중계하고 싶다”고 했다.

K리그 자체중계를 통해 중계석에 복귀한 송재익 스포츠캐스터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그는 ‘축구계 송해’란 표현을 접하곤 “영광이고, 그 분처럼 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K리그가 더 많은 팬을 만족하기 위해선 팬들의 눈높이에 맞는 경기를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유의 은유 화법으로 “K리그라는 채널이 안정적인 시청률을 얻고 싶다면 ‘뽀로로’ 같은 것을 틀면 된다”고 말했다. 높은 시청률을 원하면 결국 재미있는 콘텐츠(경기)를 내놓아야 한단 얘기다. “요즘 팬들은 옛날처럼 이기고 지는 데만 집착하지 않아요.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지더라도 열심히 뛰면 기꺼이 박수 쳐주더라고요. 축구도, 중계도 시청자들의 문화를 잘 쫓아가야 한다는 건 세대를 초월한 스포츠의 진리입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권현지 인턴기자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포츠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