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 모든 자사고 교장 기자회견… 現 중3 혼란 우려
서울 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들이 집단으로 재지정을 위한 평가보고서 제출을 거부하고 나섰다. 교육당국이 재지정 평가를 빙자해 자사고를 폐지하려 한다는 이유로 집단 행동에 나서는 강수를 꺼내든 것이다. 서울 지역 외에도 전북 상산고, 경기 동산고 등 전국 주요 자사고들이 재지정 평가 지표에 대해 일제히 반발하고 있어 진보 교육감들의 지난해 지방선거 핵심공약이었던 ‘자사고 폐지, 일반고 확대’ 기조에 급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자사고 측이 법적 대응까지 예고한 상태라 대립이 장기화될 경우, 자사고 입시를 준비하는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 자사고 교장 모임인 서울자사고학교장연합회는 25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 학부모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받아온 자사고를 말살하려 하고 있다”며 “29일로 예정된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보고서 제출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자리에는 올해 평가 대상인 13개 학교를 포함한 서울시내 모든 자사고 교장 22명이 참석했다.
자사고 측은 재지정 평가 지표의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입장이다. 이번 평가 지표가 자사고가 통상 높은 점수를 받는 학부모와 학생의 만족도 평가 비중이 낮아지고, 사실상 학생 모집이 불가능한 사회통합전형 충원률이 기존 10%에서 20%로 오르는 등 자사고 측에 불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또한 교육청의 주관이 개입되는 정성평가의 비중이 늘어나고 자사고의 강점인 다양한 프로그램 편성∙운영에 대한 배점이 낮아지는 등 전반적으로 자사고 특성에 불리한 지표라고 덧붙였다. 김철경 서울자사고학교장연합회 회장(서울 대광고 교장)은 “자체 평가 결과, 지정 취소 기준인 70점을 넘는 학교가 한 군데도 없다”고 전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기(2015년) 당시 60점이었던 통과 기준선을 교육부 권고에 따라 70점으로 상향했다.
시교육청은 이에 대해 자사고의 운영성과 평가보고서 제출은 법령에 규정돼 있다며 제출 거부는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이창우 시교육청 교육혁신과 장학관은 “시교육청의 총 31개 지표 중 27개 지표가 교육부 표준안을 따랐다”며 일단 평가보고서 제출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자사고가 이에 불응하면 시 교육청은 시정명령을 거쳐 정원감축이나 모집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 반면 서울자사고학교장연합회는 “강대강으로 맞서겠다”면서 평가 지표를 바꾸지 않을 경우 평가보고서 제출을 거부하고 행정소송 등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자사고 폐지 정책은 진보와 보수 진영의 오래된 갈등으로, 재지정 평가 때마다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과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진보 교육감들의 핵심 공약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사고가 우수한 학생을 먼저 선발해 고교 서열화와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학년도 신입생 중학교 내신성적 상위 10% 학생의 비중은 일반고가 8.5%였던 반면, 자사고는 18.5%에 달했다. 반면 자사고 측과 학생, 학부모들은 자사고가 고교 평준화 정책과 공교육의 단점을 보완해 왔다며 정부의 ‘정치 논리’에 따라 존폐가 결정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재지정 평가에 대한 자사고의 반발 움직임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전북 상산고에서는 학부모들이 지난 15일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었고, 경기 동산고에서는 학부모들의 릴레이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종훈 상산고 교감은 “특혜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상산고 역시 국내 모든 자사고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달라는 것 뿐”이라며 “1기 자사고는 사회통합전형을 뽑지 않아도 됐는데 평가 지표에 이 같은 항목을 포함하는 것은 자사고의 운영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교육청은 자사고 지정 취소 기준을 교육부 권고(70점)에 비해 10점 높은 80점으로 설정했다.
특히 일부 자사고들은 이번 평가에서 탈락할 경우, 단순히 우수 학생 유치를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의 존폐를 장담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김종필 서울 중앙고 교장은 “우리처럼 도심에 있는 학교는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학생 수가 대폭 줄어든다”며 “교육청의 시뮬레이션 결과 현재 한 학년에 약 350명인 학생 수가 약 130명대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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