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험자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고의사고(자살)를 일으켰다는 것을 보험사가 명백히 입증하지 못할 경우 재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1급 장해진단을 받은 뒤 치료 중 사망한 A씨의 상속인이 S생명보험을 상대로 재해보험금 지급을 요청한 사건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사망한 A씨는 1996년 재해로 1급 장해진단을 받을 경우 5,000만원을 지급받는 보험에 가입했다. 이후 2015년 8월 자택 방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으며 치료 중 사망했다. A씨의 상속인은 보험사에 재해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고의사고를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그 동안 보험사는 A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고, 의무기록지에도 자해ㆍ자살로 표기돼 있다며 이 사고를 자살을 목적으로 번개탄을 피운 것으로 봤다.
그러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A씨가 사고 발생 20일 전 종합건강검진을 받고 사고 전날에도 직장 동료와 평소와 같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점에 주목했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경찰 기록상 일산화탄소를 발생시킨 연소물이 A씨가 발견된 방과 구분된 다용도실에서 발견된 점, 연소물의 종류도 번개탄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점에 비춰 보험사가 고의사고를 명백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봤다.
이와 유사한 사건에서 대법원도 2001년 보험사가 피보험자의 자살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자살 의사를 분명히 밝힌 유서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정황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그 동안 막연히 고의사고를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보험사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서 성립된 결정 내용은 당사자가 수락하는 경우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다. 보험사가 수락하지 않을 경우 A씨의 상속인은 법원의 소액심판제도 등 소송에 나서야 한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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