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讀古典] 봄에 가을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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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讀古典] 봄에 가을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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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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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인지 말세먼지인지. 음울한 미래를 그린 SF영화의 하늘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했을 줄이야. 두통과 기침이 반복되니 하늘이 맑아져야 가끔 제정신. 이제는 자가 최면을 건다. 어쨌든 봄. 무조건 봄. 아무튼 봄. 봄 타령을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봄이 들어간 말들은 대부분 좋은 느낌만 준다는 점이다.

봄처녀, 봄바람, 봄밤, 신춘(新春), 청춘(靑春), 회춘(回春). 그 뿐인가. 새 봄은 있어도 새 겨울은 없고, 신춘은 있어도 신하(新夏)는 없다. 상춘곡(賞春曲)은 있지만 상추곡(賞秋曲)은 없지 않은가. 큰 선비인 송준길(1606~1672)의 당호는 ‘봄과 같은 집(同春堂)’이다. 절로 주인의 인품이 느껴진다.

한시 가운데 봄을 노래한 당나라 최호(崔護)의 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이라는 작품이 있다. 중국인들은 보통 인면도화(人面桃花)라고 한다. 맺음 부분이 다음 같다. “그 님은 어디로 갔는지. 복사꽃만 예같이 봄바람에 웃고 있네.(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동일하게 봄을 노래했지만 주희의 시는 사색적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순간의 세월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가 봄풀이 꿈도 깨기 전에 계단 앞 오동잎이 가을을 알린다.(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주희와 같이 봄과 가을을 짝짓는 것은 한자문화권의 오랜 전통이다. 한시를 들춰보면 4계중 유독 봄과 가을 소재로 한 시가 많다.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를 보아도 봄과 가을과 관련한 시가 편수도 많고 걸작도 몰려 있다.

봄과 가을을 짝지은 사자성어도 적지 않다. 춘란추국(春蘭秋菊), 춘화추월(春花秋月), 춘화추실(春華秋實), 춘풍추상(春風秋霜) 등등. 그러나 단언컨대 봄과 가을, 즉 춘추를 연결 지어 말한 것 중 가장 위엄 있는 워딩은 ‘춘추(春秋)’이다. 춘추는 원래 일 년을 뜻하다가 나이나 세월을 뜻하다가 다시 역사를 표현하는 말이 된다. 공자가 지었다는 역사책 ‘춘추’는 동양고전에서 절정의 무게감을 자랑한다.

유협(劉勰)은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춘추’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 칭찬 한 마디는 높은 벼슬보다 고귀했고, 그 질책 한 마디는 도끼보다 깊게 베었다.(褒見一字, 貴踰軒冕, 貶在片言, 誅深斧鉞)” 면암 최익현(1833~1905) 선생도 말하셨다. “평생 공자의 ‘春秋’를 읽었다.(一生長讀魯春秋)” 역사를 응시하는 서릿발 같은 기개가 절로 느껴진다.

삼국지연의에 관우가 ‘춘추’를 탐독하는 고사가 나온다. 중국인은 열광하며 말한다. “산동의 공자께서 ‘춘추’를 지으셨고 산서의 관공께서 ‘춘추’를 읽으셨다(山東孔夫子作春秋, 山西關父子讀春秋)” 관우가 조조 밑에서 유비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머물던 거처의 이름은 춘추각. 관우가 사용한 칼을 춘추대도라고 한다. 모두 정의와 엄정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유명세에 비해 현재 중국에서 ‘춘추’를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한국인에게 춘추와 관련하여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청와대의 춘추관일 듯싶다. 춘추관은 고려 때부터 설치된 관청이다.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까지 춘추관이라는 이름이 사용되니 과연 춘추라는 브랜드 파워가 세긴 세다. 고려와 조선의 춘추관은 주로 조정의 사료를 담당하고 편찬했다. 지금은 청와대가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나 언론과 접촉하는 건물의 이름으로 쓴다. 정부의 공식 견해를 밝힌다는 점과 올바른 말만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니 고려와 조선의 춘추관과 기능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보도매체에서 정론과 직필을 상징할 때도 춘추라는 말이 등장하곤 한다.

‘춘추’에 대해 사마천은 그 가르침이 수천 가지(其指數千)라고 말했다. 필자도 졸역을 해보았지만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다. 찾아보니 한나라 유향(劉向)은 ‘춘추’의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했다. “바른 봄이 있다면 어지러운 가을은 없다.(有正春者無亂秋)” 유향은 봄에 시작이라는 뜻을 가을에 결실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듯하다. ‘춘추’라는 서명을 시적으로 풀었다고 할까. 주희와 문법이 유사하다.

직업상 3월의 신입생들에게 누누이 당부한다. 1학년 1학기의 마음을 유지해야 웃으며 졸업한다고. 봄에는 모두 푸른 꿈이 있지만 추수의 기쁨을 거두는 자는 적다고.

공자가 말했다. “싹만 트고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있고, 꽃은 피었어도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이 있다.(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 나이가 드니 더욱 서러운 말도 있다. “후배들이 두려울 만하니 앞으로 오는 자들이 지금 우리보다 못할 줄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40,50이 되어서도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 또한 두려워할 자가 아니다.” 역시 공자님 말씀이다. 젊을 때는 배울 날도 많고 힘도 굳세 큰 성취를 기대하지만, 젊음만 믿고 노력하지 않다가 늙고 지쳐 어찌할 바가 없게 되면 슬프지 않겠는가.

참, 아까 말한 유향의 말은 이렇게 맺는다. “바른 임금이 있는데 위태로운 나라는 없다(有正君者無危國).”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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