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린 23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갑자기 집채만한 비룡이 날개를 펄럭이며 등장했다. 높이 떠올랐다 급강하를 반복하더니 날카로운 발톱으로 전광판을 깨고는 구장 한 가운데에서 날개를 펼친 뒤 불꽃을 내뿜으며 포효했다. 몇몇 선수들만 몸을 푸느라 비어있던 구장을 비추는 카메라 화면에 가상 이미지로 대형 비룡을 만들어 띄운 것이다. TV나 스마트폰으로 중계를 보던 이들은 경기장 지붕과 관중석을 날아다니는 비룡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고, 현장에 있던 관중들에게는 전광판 화면으로 전달됐다.
오는 4월 5일 ‘갤럭시S10 5G’ 출시로 본격적인 5세대(G) 통신 시대가 개막한다. 이동통신사들은 초고속, 초저지연이 특징인 5G 통신을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킬러 서비스’를 꾸준히 구상해왔고 올해부터 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될 서비스는 현실 위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 즐기는 실감형 미디어 서비스, ‘증강현실(AR)’이 될 전망이다.
SK텔레콤은 5G 대표 상품으로 AR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로 AR 개념은 익숙해졌지만, 23일 개막전에서 선보인 비룡 퍼포먼스는 포켓몬고와는 다른 ‘매시브(massive) AR’이다. 포켓몬고는 개인용 스마트폰으로 각자의 AR 콘텐츠를 즐기게 되지만, 매시브 AR은 수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동일한 콘텐츠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야구 경기장처럼 규모가 큰 현실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야 하고,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든 생생한 3차원(D) 움직임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전진수 SK텔레콤 미디어랩스장은 “자체 개발한 ‘5G 하이퍼 스페이스 플랫폼’을 이용해 경기장 전체를 실제 크기와 동일한 3D 디지털 모델로 재구성했다”며 “’T 리얼 플랫폼’으로 비룡 AR을 구현한 뒤, 비룡의 위치와 포즈가 실시간으로 실제 경기장 모습과 자연스럽게 맞춰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벤트에서는 현장에 있던 관중이 앱을 통해 응원 버튼을 누르면 비룡이 다시 날아오르는 등 현장 반응과 상호작용하는 ‘인터랙티브 AR’ 기능도 보여줬다.
LG유플러스는 AR에 아이돌 콘텐츠를 접목시켰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사용자의 방 안으로 불러내는 서비스가 4월 중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방을 비추고 있으면 아이돌이 등장해 춤을 추는데, 화면을 터치하면서 360도로 돌려볼 수도 있다. 방에 등장한 아이돌과 같이 포즈를 취하고 사진과 영상도 찍을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AR의 특성이 아이돌을 실제로 보고 싶어 하는 욕구와 딱 맞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KT는 다음달 ‘나를’이란 이름의 최대 8명 그룹 영상통화 앱을 출시하는데 얼굴을 따라다니는 가상 이미지,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이미지 등을 AR로 구현할 예정이다.
전진수 미디어랩스장은 “초고속, 초저지연 5G를 활용하면 실감 미디어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5G 기반의 AR, 가상현실(VR) 혁신이 생활 속에서 체감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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