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겐 지난 일주일이 출범 이후 가장 우울한 시간이었을 것 같다. ‘경사노위 해체론’, ‘사면초가 경사노위’, ‘고개 숙인 경사노위’, ‘경사노위 표류’ 등 언론 기사의 제목만 보더라도, 최근 경사노위의 어려운 처지가 잘 드러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다룰 본위원회가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의 불참으로 무산되며 시작된 경사노위의 위기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관련 협상마저 삐걱대면서 더욱 악화하고 있다.
정부와 관련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ILO 핵심 협약 비준은 우리나라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고 96년부터 지금까지 이사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8개 핵심 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강제노동 금지 등에 관한 4개 협약은 비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ILO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로부터 불필요한 비판을 받아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 7월, 경사노위는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를 설치해 단결권 등에 관한 2개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 대화를 시작했다. 이제 그 논의가 마무리되어야 할 시점인데, 오히려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기구로서의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위기의 주요 원인이 한국 노사의 사회적 대화 역량이 약하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월요일 기자회견에서 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위원장인 박수근 교수는 “노사가 사회적 대화에 조속히 임해 3월 말까지 관련 쟁점에 대해 타협 가능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우선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타결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날인 화요일엔 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논의하기에는 노사간 신뢰와 주고받아야 한다는 기본 매너가 너무 안 되어 있다”고 털어놨다. 위 두 발언을 연결시켜 보면, 노사정위가 노사 모두에게 협상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세를 갖춰 달라고 요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핵심 협약 관련 합의 가능성은 고사하고, 협상 당사자들의 ‘기본 매너’가 거론되는 지금 상황은 경사노위 바깥에서 사회적 대화의 결실을 기다린 모든 사람을 실망시키고 있다. ILO 핵심 협약 관련 대화는 비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경사노위 논의를 통해 노사정 합의를 이루고, 이를 우리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ILO 핵심 협약의 비준은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과 연결되는데,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에서 이러한 입법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도 그 논의가 중요한 이유다. 즉, 핵심 협약 비준에 관한 협상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그 피해는 정규직 노동조합이나 기업이 아닌, 비정규직과 같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에게 돌아간다. 이 점에서 노사 당사자는 경사노위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요구사항이 상대방이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스스로 살피고, 상대방의 요구사항이 수긍할 만하거나 관련된 외국의 입법례가 있는지 등을 따져 실제 협상에 쓸 합리적 대안을 마련할 책임이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야당 의원이 경사노위의 해체를 주장했다고 한다. 노사가 그 주장에 동조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 상황이 경사노위란 한 정부 기구의 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노사 자치 원칙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 대화는 눈앞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 세대와 노동법의 보호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시급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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