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조사 후 “증거 부족”… 어설픈 조사 ‘美 주의보 포함’ 빌미
미국 정부가 21일(현지시간) 북한 불법 해상운송 관련 주의보를 통해 북측 불법환적과 연루됐다고 지목한 한국 선적 선박은 지난해 우리 정부 차원의 조사에서 증거가 확실치 않아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북미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미측이 제재망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부가 어설픈 조사로 면죄부를 줬다가 한국 선박의 이름을 미측 주의보에 올리는 오명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이번 주의보를 계기로 우리 정부에도 제재망 강화를 적극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북한 정제유 및 석탄 불법환적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 되는 북한, 러시아 등 선박 95척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루니스(LUNIS)’라는 이름의 한국 선적 선박을 포함했다. 한국 선적 선박이 이 주의보에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아시아ㆍ태평양지역 항만국 통제위원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루니스호는 해상 유류공급선이며 부산 지역에 위치한 해운업체 소유로 등록돼 있다.
루니스호가 포함된 주의보가 발표되자 외교부는 22일 “동 선박은 그간 한미간 예의주시해 온 선박”이라고 밝혔다. 실제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등 정부 당국은 지난해 루니스호의 불법환적 연루 여부를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당국은 루니스호가 중국 선적에 넘긴 유류가 북측으로 반입됐다는 첩보를 입수해 지난해 9월 26일 여수항 출항을 보류시키고 약 보름에 걸쳐 루니스호와 선사를 조사했다”며 “정황 증거는 충분했지만 물증이 부족해 무혐의로 판단, 10월 15일 출항보류 조치를 해제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에서 일찍이 루니스호의 이상 행태를 감지했음에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억류 등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결과,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 이 선박의 활동에 대해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 재무부의 주의보 발표는 한국 정부를 향해 ‘대북제재망 강화에 적극 동참하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이 지난달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핵심 대북제재 결의 5가지의 해제를 요구하면서 합의가 결렬되자 미측은 전세계 대북제재망 유지에 한층 힘을 쏟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정부가 남북 경제협력 등 제재완화를 설득할 조짐이 보이자 ‘한국도 제재 기조에 있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현재 정책 기조는 대북제재를 다시 강화해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게 하려는 것”이라며 “그 점에 있어 제재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한국도 예외로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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