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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테러 이용, 국제 종교갈등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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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테러 이용, 국제 종교갈등 부추긴다

입력
2019.03.21 17:47
수정
2019.03.21 19:4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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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지방선거 유세 모습. AP 뉴시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지방선거 유세 모습. AP 뉴시스

사망자만 50명에 달한 뉴질랜드 내 이슬람사원 총격테러가 호주ㆍ뉴질랜드와 터키 간 정면충돌로 번졌다.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대통령이 이번 참사를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에 이용하면서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서방권에서도 선거 승패를 가른 핵심구호는 ‘반(反)무슬림ㆍ이민’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의 탐욕이 자칫 중세 십자군 전쟁 때나 벌어졌던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 갈등을 부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호주ㆍ뉴질랜드와 터키 간 갈등에 불을 지른 건 지난 18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지방선거 유세였다. 이달 말 선거를 앞두고 차나칼레시를 찾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반무슬림 정서를 품고 터키에 오는 호주인과 뉴질랜드인은 선조들처럼 관에 담겨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나칼레는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호주ㆍ뉴질랜드 군인 수만명을 포함한 연합군이 터키의 전신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지배하던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하려다 대패한 곳이다. 해마다 갈리폴리 전투가 일어난 4월 25일이면 수천 명의 호주인과 뉴질랜드인이 차나칼레를 찾아 추모행사를 벌인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강력히 반발했다. 호주 정부는 20일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을 “매우 무모하고 악의적”이라고 비난하며 자국 주재 터키 대사를 불러 항의했고, 국민들에게도 갈리폴리 추모행사 참가를 재고하도록 요청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발언을 철회하지 않으면 모든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공개 경고했다. 최악의 참사를 수습하느라 분주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터키 측 입장을 직접 들어보겠다”면서 윈스턴 피터스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터키로 급파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15일 뉴질랜드 참사 발생 후 수일간 집회와 유세에서 테러범 브렌턴 태런트가 직접 촬영한 영상을 정치 선동에 이용했다. 영상 편집본을 반복적으로 보여 주면서 “서방에 이슬람 혐오가 만연해 있다”고 맹비난했다. 뉴질랜드 테러를 무슬림을 향한 서방의 공격으로 규정함으로써 지지층 결집을 유도한 것이다. 터키의 친정부 매체들도 연일 “사방에 태런트가 가득하다”, “서구에 파시즘 물결이 번지고 있다” 등 자극적 제목으로 터키인들의 민족감정을 들쑤시고 있다. 이를 두고 엠레 에르도안 빌기대 교수는 “정치적 목적으로 테러라는 외부 희생양을 악용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문제는 테러나 무슬림 혐오 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서방과 아랍 모두에서 부쩍 많아지는데다 이런 움직임이 유력한 정치세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뉴질랜드 테러범이 ‘백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상징’으로 추앙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무슬림ㆍ이민정책을 노골화했고,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기독교ㆍ이슬람교ㆍ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이전함으로써 폭발력이 큰 종교 문제까지도 정치 수단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지난해엔 포용국가의 대명사 격인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도 반무슬림과 난민 수용 반대를 주장한 극우 정당이 약진하거나 아예 정권을 거머쥐었다. 이런 기류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뉴질랜드 테러 악용은 겉에 드러난 주장은 정반대이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갈등을 부추긴다는 점에선 전혀 다르지 않다.

뉴질랜드 테러 발생 후 네덜란드와 이탈리에서 테러 의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네덜란드 총격 사건 용의자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연계설에 휩싸였고, 지중해를 건너오다 세 딸을 잃은 세네갈 출신의 이탈리아 스쿨버스 방화범은 유럽 국가들의 반난민 정책을 비난했다. 이들이 ‘외로운 늑대’라 할지라도 주요 국가 정치권의 갈등ㆍ분열을 부추기는 행보가 계속되고 특히 종교 문제까지 결부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 실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연일 무슬림의 항전을 촉구하는 듯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곧 궤멸할 것이라고 지목한 IS는 뉴질랜드 테러를 무슬림에 대한 학살로 규정하며 공개적으로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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