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의혹 환경공단 이사장 임명
“도덕적 감수성 없다” 비판 봇물

“후보자를 잘 봐달라는 업자들의 부탁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이거 정말 큰 문제구나 싶었죠.”
지난 14일 김강렬 광주환경공단 이사장 후보자에 대한 광주시의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청문위원이었던 한 광주시의원은 이런 넋두리를 했다. 그는 “그 양반(김 후보자)이 (임명)되면 임기 3년간 재미있게 해먹을라고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환경공단 특성상 환경관리 시설 보수공사 및 약품 구매가 수시로 이뤄지는데, 이를 둘러싸고 업자와 김 후보자가 사전에 결탁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더구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 후보자가 환경단체 대표로 활동할 당시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정관을 어기고 급여 등으로 1억여원을 받아 챙겨 횡령 의혹과 함께 도덕성 흠결이 불거진 것도 이런 의심을 키웠다. 그는 “이런 후보자가 임명되면 안 되는데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1주일 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21일 광주시의회의 부적절 의견을 담은 경과보고서를 무시하고 김 후보자를 이사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입장문까지 내고 자신의 결정을 강변했다. 이 시장은 “시민단체와 언론 등 지역 여론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시의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에도 김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사유가 될 만한 중요한 지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어 “김 후보자의 도덕성 문제는 아쉬운 부분이고, 일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30여 년간 환경운동가로서 최선을 다해온 점 등을 고려해 광주발전에 헌신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시장의 결정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거의 폭발 직전이다. 당장 시민단체인 참여자치21은 김 후보자를 횡령 혐의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자칫 김 이사장이 임명 직후 수사를 받게 되는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참여자치21은 앞서 20일 성명을 내고 “김 후보자는 시민의 상식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이 시장에게 인사 절차를 다시 밟을 것을 요구한 터였다. 참여자치21의 한 관계자는 “이 시장이 횡령 의혹 등 도덕적 흠결이 드러난 후보도 공공기관장 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며 “이게 이 시장이 입버릇처럼 외치던 ‘정의로운 광주 만들기’이고, 혁신이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시장은 민선 7기 시정 캐치프레이즈로 ‘풍요롭고, 정의로운 광주’를 내걸고, 인사 등 시정에 대한 혁신을 강조해왔다.
시의회 내부에서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부 시의원들은 “이 시장이 인사청문회 도입 취지를 무력화하고 의회까지 경시했다”고 발끈하고 나서 향후 이 시장과의 관계 악화를 예고했다. 한 시의원은 “횡령 의혹 등 도덕 불감증에 빠진 후보를 공공기관장으로 임명한 이 시장의 도덕적 감수성은 제로(0)다”고 힐난했다. 또 다른 시의원도 “채용공고에서부터 후보자로 추천되기까지 적법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 선정된 후보였다는 이 시장의 말에 가슴이 턱 막힌다”며 “김 후보자는 공모 과정에서 스스로 사전내정설을 흘렸고, 서류 면접에서 꼴등을 하고도 면접에서 1등을 한 인사였다는 걸 이 시장은 모르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이 시장이 입으로는 혁신을 외치면서 뒤로는 퇴행적인 인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광주환경공단 내부에서조차 이 시장의 결정에 대해 혀를 차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한 직원은 “시의회가 김 후보자에 대해 ‘공공기관장으로서 적절한 후보자라고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을 이 시장은 ‘부적격 의미가 아니다’고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했다”며 “이 시장의 이런 현실인식이 참담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이 시장의 인물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까지 들린다. 시 산하 기관의 한 직원은 “이번 김 이사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은 시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인사권 행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며 “내부에서도 이 시장의 결정을 두고 배짱인지 오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뒷말이 나온다”고 비난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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