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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외과 지원의는 줄고 환자는 늘고… 이미 병실은 사실상 무의촌”

입력
2019.03.22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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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다 수술 기록 외과의, 노성훈 전 연세암병원 원장 

세계 최다 수술 기록 보유자인 노성훈(왼쪽) 전 연세 암 병원장은 18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조재우 논설위원과 만난 자리에서 “의사 부족으로 이미 병실은 의사가 없는 무의촌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영권기자
세계 최다 수술 기록 보유자인 노성훈(왼쪽) 전 연세 암 병원장은 18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조재우 논설위원과 만난 자리에서 “의사 부족으로 이미 병실은 의사가 없는 무의촌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영권기자

외과 의사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현직 외과 의사 중에는 50세 이상이 많다. 이들이 수술실에서 은퇴를 하는 10년 뒤에는 외과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수술 절벽’의 시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국의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 8,299명 중 50대 이상이 4,554명(54.9%)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은 대략 10년 후가 되면 수술하기가 버거워진다. 하지만 이들의 빈자리를 채울 외과 의사 충원은 부진하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전국 외과 및 흉부외과 레지던트 지원자는 929명으로 정원(1,243명) 대비 충원율이 74.7%에 불과했다. 업무강도가 높은데 비해 수입이 적고, 외과 수술비에 대한 의료수가가 다른 과에 비해 크게 낮기 때문이다. 외과 수술비가 쌍꺼풀 수술비보다도 낮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2017년부터 전공의(레지던트) 수련시간이 80시간으로 제한되면서 수술 현장은 벌써부터 비상이다. 더욱이 2025년 초고령사회(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에 진입하면 수술 수요는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외과 의사가 부족해 질 것이라는 경고는 계속 있었다. 하지만 정부나 의료계 모두 손을 놓고 있다. 핵심 요인인 외과 의료수가 인상에 대해 아무도 총대를 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최다 수술기록을 보유한 노성훈 전 연세 암 병원장을 만나 의료 현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건강해 보인다.

“나도 암 환자다. 2014년 11월에 후두암 진단을 받아 7주간 방사능 치료를 받았다. 4년 3개월 됐다. 암은 5년을 봐야 한다. 술도 조금 마신다.

-환자에게 술 마시지 말라면서 의사들은 자주 마시던데….

“(웃음) 의사가 하는 말은 따라도 행동하는 건 따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특임교수가 된다고 들었다.

“2014년부터 연세 암 병원장을 하다 2월 말에 정년 퇴임했다. 5월 1일부터 10년간 특임교수로 진료한다. 특임교수는 연세의료원에서 사상 두 번째다. 석좌교수 같은 거다. 큰 영광이다. 대우는 그대로다. 수술도 직접 한다. 월급을 많이 받으니 일도 많이 해야 한다.”

-1만 건 이상 수술을 했다.

“1987년부터 전임강사로 일했는데 2017년 11월까지 위암 환자의 위절제 수술을 1만 건 했다. 전무후무한 세계 최다 기록이다. 기네스북에 문의했으나 수술 건수 같은 진료기록으로는 기네스북에 올라갈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 ‘수술 절벽’이 10년 내 올 수 있다는데.

“일리 있는 얘기다. 외과 의사 공급이 점점 줄어드는데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고령화하니 질병이 많이 생기게 된다. 외과 수술에 대한 수요는 많아지는데 외과 지원자는 줄어들고 중도 포기 의사도 많다. 수급 불균형으로 좋은 의료를 받을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외과 수술 의료수가가 원가보다 얼마나 낮은건가.

“현재 우리(외과) 수술 수가가 원가의 75%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수술하면 할수록 마이너스가 된다. 경영 압박 때문에 의사를 덜 쓰는 문제가 생긴다. 결국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왜 수가가 낮은 건가.

“외과 의사들이 잘못한 게 있다. 30여년 전 건강보험이 시작되면서 수가를 정할 때 외과 의사들이 바쁘고 보험에 대한 인식이 안 서 있었기 때문에 참여도가 떨어졌다. 다른 과는 열심히 참여해 수가를 처음 정할 때 목소리를 크게 냈다. 그래서 외과 수가가 잘못 책정됐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보니 지금까지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수가를 유지하게 됐다.”

-병원에서 외과 의사를 고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병원이 살아남으려면 경영이 돼야 한다. 경영이익은 인건비 문제다. 인건비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이 의사다. 그래서 의사 숫자를 최소화하려는 거다. 또 외과에서 수술과 진료를 하려면 어느 정도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수술실 마취실 검사장비도 있어야 한다. 혼자 개업하기엔 상당한 부담이다. 그래서 종합병원에 근무해야 하는데 병원은 경영을 위해 의사를 줄이려 한다. 대부분의 병원이 의사를 최소한으로 쓰려 한다. 그래서 병원 병실은 사실상 무의촌이나 다름없다. 남은 의사들은 응급실이나 수술실에 가있다. 병을 고치려 병원에 가지만 수술 후 입원하면 정작 병실에 의사가 없다.”

-정부에서 의사 인력 수급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뻔히 알면서 정부가 방치하는 것 아닌가.

“보건의료에 대한 정부 예산은 무한정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파이는 정해져 있는데 특정 과의 지원을 높여 주면 다른 과의 지원이 줄어든다. 의사 집단 내에서도 합리적 타협이 쉽지 않다. 추가적 예산이 투입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수가를 올리고 또 다른 예산을 책정하려면 세금을 올려야 한다. 정부도 뻔히 알지만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케어’도 불편할 수 있겠다.

“그렇다. 문재인 케어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비급여의 급여화다. 모든 국민들이 많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좋은 얘기지만 결국 질적으로 하향 의료가 될 수밖에 없다. 선진 의료기술이 만든 신약은 비쌀 수밖에 없다. 표적치료제나 면역치료제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다국적기업에서 개발하면 처음에는 비급여로 고가의 약으로 책정된다. 만약 이를 무리하게 급여로 한다면 국민이야 싼값에 치료받으니 좋다. 하지만 공급자를 죽이는 것이다.”

-의사가 특정 과로 너무 쏠리는 것 아닌가.

“의료 수가가 좋은 곳, 덜 힘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밀집되고 있다. 수가 현실화가 답이다. 특히 외과 쪽에 수술료나 처치료를 100%로 해 주는 게 맞다. 그래야 잠 못 자고 열심히 당직을 서도 보람을 찾을 수 있다. 전공의(레지던트) 시절 3~4년 힘든 건 참을 수 있지만 끝나고 나서도 다른 과보다 보상이 적다면 안 온다.”

-2017년부터 전공의 수련 시간을 ‘주 80시간’으로 제한했다. 부작용은 없나.

“전공의는 피교육자다. 과거에는 전공의를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전문의는 1,000만원 가까이 줘야 하지만 전공의는 300만원 정도로 월급이 적다. 전공의는 교육을 받는 것이 중심인데 일을 시키는 거다.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가고 병원에서 먹고 자고 밤이건 낮이건 병원에서 일했다. 그런데 이제는 곤란하다. ‘주 80시간’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 맑은 정신과 몸으로 있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진다. 우려되는 건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주 80시간’에 걸려 오후 6시가 되면 수술실에 들어가 있던 전공의들이 나가고 당직을 하는 전공의들이 들어온다.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법을 지키면서 교육을 하기가 어렵다. 충분히 교육을 받지 못한 전문의가 배출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학회마다 교육보충을 위한 여러 노력을 한다. 외과의 경우 10여 년에 걸쳐 가장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건 다른 학회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교육을 위한 술기(術技)센터가 오송과 인천에 있다.”

-외과 지원 학생들에게 장학금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하면 해결되나.

“그렇지 않다. 전공의 과정이 끝나고 미래가 보여야 한다. 그래야 힘들어도 감내할 수 있다. 전공의를 마치는 때가 30대 초반이다. 이후 살아야 하는 시기가 30~40년 된다. 그래서 젊은 의사들이 의료 수가에 민감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뭔가.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국민들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의료 혜택을 받고 있는지 잘 모른다. 캐나다나 영국에서는 진료를 받으려 해도 3~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가장 최악의 의료 시스템이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든 병원에 달려가면 최고의 진료를 받는다. 수가는 캐나다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낮다. 일본의 5분의 1, 미국의 7분의 1 수준이다. 지금까지 의사나 의료기관이 많이 희생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의사라고 하면 잘 사는 놈들이라 생각하고 배부른 소리라 생각한다. 이건 아니다. 고생도 많이 하고 자살도 하고 얻어맞아 죽기도 한다. 특히 외과 의사는 엄청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의료 분쟁도 많다. 그런 위험에 비해 보상이 적절하지 않은 수준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뒤로 빠져서는 안 된다.”

인터뷰=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 노성훈 전 원장은

1954년생. 연세대 의대 졸업 후 석사를 마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1987년 세브란스병원 외과 전임강사로 시작, 2014년부터 올해 2월까지 연세 암 병원장을 지냈으며, 5월부터 특임교수가 된다. 대한위암학회 회장, 대한암학회 이사장, 국제위암학회 회장, 대한외과학회 회장과 이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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