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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세계에서 한국산 무기 가장 많이 사는 '동남아의 맹주'

입력
2019.03.21 17:00
수정
2019.03.21 20: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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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에서 열리는 ‘2018 동방경제포럼’을 앞두고 수호이(Su)-35S 전투기가 루스키섬 상공에서 시험 비행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Su-35 11대 도입을 추진 중이며, 협상 막바지 단계에 놓여있다. 블라디보스토크=타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에서 열리는 ‘2018 동방경제포럼’을 앞두고 수호이(Su)-35S 전투기가 루스키섬 상공에서 시험 비행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Su-35 11대 도입을 추진 중이며, 협상 막바지 단계에 놓여있다. 블라디보스토크=타스 연합뉴스

세계에서 한국산 무기를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어딜까.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정답은 인도네시아다. 2014년~2018년 한국이 수출한 무기의 17%가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 국방력 세계 15위… ‘비동맹’ 내세운 동남아 강국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인도네시아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ㆍASEAN)의 한 나라 정도로 알고 있지만, 인도네시아는 이 지역의 패권국가, 즉 맹주다. 인구는 2억7,000만명에 육박해 세계 4위, 미국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발표한 2019년 국방력은 세계 15위로 동남아에서 가장 높다.

그래서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비동맹 중립외교’를 표방한다. 특정 패권질서에 들어가는 대신 미국, 중국과 각각 양자적 유대관계를 적극 추구한다는 것이다. 낭만적인 소리 같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주변에 공공연한 적성국이 없어 외침 우려가 적다. 호주 시드니대학 미국연구센터의 ‘인도네시아: 자립을 위한 미중 균형외교’ 보고서가 이 나라의 외부 안보 상황을 ‘대체로 온화하다’고 묘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도 동남아에서 맹주적 지위를 인정, 인도네시아를 존중한다.

물론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역내 안보 질서 변동 △남중국해 분쟁 △지정학적 위치상 호주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 등과 잠재적인 긴장 관계는 주요 안보 변수이다.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한국 해군의 장보고급 잠수함. 한국일보 자료사진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한국 해군의 장보고급 잠수함. 한국일보 자료사진

외부 위협은 크지 않지만, 해양국가인 만큼 인도네시아는 육군보다는 최근 해ㆍ공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군 현대화의 핵심은 러시아제 신형 다목적 전투기 수호이(Su)-35와 한국 대우조선해양의 장보고급 잠수함이다. 방산 전문매체 제인스360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해군은 8년 전 3척을 도입한 데 이어, 최근에도 209급 장보고함을 개량한 1,400톤급 잠수함 3척의 추가 도입을 위한 최종 협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 Su-35 11대 도입을 위한 인도네시아와 러시아간 협상도 막바지 단계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시드니대 보고서는 “인도네시아 지도자들은 미중 패권 다툼에 따른 세계질서 변동이 인도네시아가 ‘대국’(big country)’으로 성장할 기회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군비 확충이 동남아 역내 패권 유지뿐만 아니라 글로벌 파워로서의 도약을 위한 준비라는 것이다.

◇ 군 현대화로 입지 다지고… ‘글로벌 해상 강국’ 꿈꿔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2014년 7월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당선인 신분으로 ‘통합된 인도네시아’를 뜻하는 세 손가락 사인을 들어 보이며 지지자들을 반기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2014년 7월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당선인 신분으로 ‘통합된 인도네시아’를 뜻하는 세 손가락 사인을 들어 보이며 지지자들을 반기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실제로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대통령은 2014년 대선 캠페인에서 ‘글로벌 해양 강국’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발표했다. 인도네시아는 1만8,000여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다. 동자바섬 일대에서 수세기 전 해상왕국의 위용을 떨쳤던 마자파히트 왕국에서 영감을 받은 조코위 대통령은 국내 발전과 역내 안정을 위해 ‘해양 국가’의 정체성 확립을 내세우며 전임인 군 장성 출신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에 이어 군비 지출을 계속 늘리고 있다. 2000년대 초반 2조원 내외였던 국방비는 현재 9조원을 넘고 있다.

현대의 대표적인 전술수송기 록히드 마틴사가 C-130 이후 내놓은 후계기종, C-130J 슈퍼 허큘리스. 코리아타임스 자료사진
현대의 대표적인 전술수송기 록히드 마틴사가 C-130 이후 내놓은 후계기종, C-130J 슈퍼 허큘리스. 코리아타임스 자료사진

앞서 언급한 것처럼 Su-35 11대, 영해 방어ㆍ치안 유지를 위해 장보고급함을 비롯한 잠수함 12대 도입에 군비의 상당수가 투입 중이다. 2008년~2017년 무기 수입액(53억9,000만달러) 중 39%와 31.3%가 항공기와 함정 구입에 각각 사용됐다. 제인스360에 따르면 미국제 C-130 허큘리스 수송기의 60년대 노후화된 모델 20기를 C-130J 슈퍼 허큘리스로 교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인도네시아의 군 현대화 작업은 한국 방산분야에 훈풍으로 작용해 왔다. 이미 우리나라로부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T-50 고등훈련기, 대우조선해양의 장보고함을 개량한 1,400톤급 잠수함 등을 수입했다. 협력 수준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KAI와 사업비를 공동 부담(20%ㆍ1조7,000억원)해 2026년까지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 ‘KF-X/IF-X’ 사업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 中 일대일로 vs. 美 인도태평양… “편 안 들것”

올해 2월 열린 동남아 최대 다자간 군사훈련 ‘코브라골드 2019’에서 미군이 상륙 돌격 훈련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주요 7개국 중 하나로 참여했다. 코브라골드 훈련의 규모가 날로 커지면서 대중 포위망 구축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오는 가운데, 중국과 인도는 인도적 민사 활동 부분에서만 참여했다. 촌부리=EPA 연합뉴스
올해 2월 열린 동남아 최대 다자간 군사훈련 ‘코브라골드 2019’에서 미군이 상륙 돌격 훈련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주요 7개국 중 하나로 참여했다. 코브라골드 훈련의 규모가 날로 커지면서 대중 포위망 구축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오는 가운데, 중국과 인도는 인도적 민사 활동 부분에서만 참여했다. 촌부리=EPA 연합뉴스

인도네시아의 군사력 증강은 미중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를 확보하고 독립ㆍ자주적 외교 방침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지난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기고에서 루훗 빈사르 판자이탄 해양조정장관은 “미들 파워(중견국)로서 인도네시아는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은 양쪽의 레버리지를 모두 없앨 것”이라고 밝혔다. 레트노 마르수디 외무장관도 올 1월 외교연설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이 천연자원을 놓고 다투거나 해양패권을 차지하는 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다만 전술적으로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명확한 입장을 밝힐 수는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특히 그렇다.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는 중국과의 어업권 분쟁이 불거졌던 남중국해 나투나 제도에 1,000명 이상이 주둔 가능한 새 군사기지를 설치해 운영에 들어갔다. 해당 해역은 인도네시아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지만, 일부 지역이 중국이 자국령으로 주장하는 '남해 9단선’과 겹쳐 양국 간 분쟁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22일 중국-아세안 합동군사훈련이 최초로 열린 가운데, 중국 광동성 잔장에서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군과 해군들이 개막식에서 중국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잔장=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0월22일 중국-아세안 합동군사훈련이 최초로 열린 가운데, 중국 광동성 잔장에서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군과 해군들이 개막식에서 중국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잔장=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7월에는 일본과 이틀간 합동훈련을 했으며, 올 2월 미국과 태국이 주최한 동남아 최대 다자간 군사훈련인 ‘코브라 골드’에서는 한국ㆍ일본 등과 함께 주요 7개국 중 하나로 참여했다. 지난해 10월 사상 처음으로 진행됐던 아세안-중국 합동 해상훈련에 군함을 보내지 않고 관측병만 파견한 것과는 대비된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중국과 경제ㆍ군사 측면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안보전문매체 ‘더 디플러맷’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와 중국은 2011년 방위산업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정기적으로 방산협력회의를 열고 있다.

1955년 당시 미국과 소련 양 진영에 속하지 않았던 아시아ㆍ아프리카 국가들이 모임인 ‘반둥회의’를 주도, 비동맹 중립 외교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인도네시아로서는 양쪽 채널을 모두 열어 놓으려는 욕심이 있는 것이다. 루훗 해양조정장관은 SCMP 기고글에서 “인도네시아에 대한 중국의 위협은 없다”면서 “다만 경제력ㆍ군사력에 있어 중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고자 할 뿐”이라며 중국과의 정면충돌 피했다.

중국을 외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다. 20일 자카르타포스트 등 현지 언론 따르면 루훗 장관은 인도네시아가 중국의 일대일로에 동참할 것이며, 130조원 상당의 인프라 건설 사업 28개 프로젝트를 중국 투자자들에게 곧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조코위 대통령은 경제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도로와 항만, 전력 등 핵심 인프라 구축 사업 추진했으나,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이 장기화되는 등의 이유로 재원 마련에 어려움 겪어왔다. 이에 중국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성장 기회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앞으로도 ‘미들 파워’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비동맹 노선을 견지하면서 미국과는 군사 협력을 맺는 한편,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동참해 ‘대국’으로 성장할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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