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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다, 고전] 길을 잃고 신음하는 사랑꾼들을 위하여

입력
2019.03.21 19:30
수정
2019.03.23 10:3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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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인정하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격주 금요일 <한국일보> 에 글을 씁니다.

<3>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사랑의 단상’을 원작으로 한 프랑스 영화 ‘렛 더 선샤인 인’ 포스터. 주인공 이자벨(줄리엣 비노쉬)은 남편과 이혼 후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선다. 아드 비탐 디스트리뷰션 제공.
‘사랑의 단상’을 원작으로 한 프랑스 영화 ‘렛 더 선샤인 인’ 포스터. 주인공 이자벨(줄리엣 비노쉬)은 남편과 이혼 후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선다. 아드 비탐 디스트리뷰션 제공.

“롤랑, 롤랑, 마 롤랑(Ma Roland; 내 롤랑).” 어머니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 음악처럼 불리는 이름. 조용한 탄식 같기도, 기도의 마지막 같기도 하다. 날마다 그렇게 불린 아이는 (당연하지만) 롤랑 바르트로 자란다. 프랑스의 지식인, 기호학자, 구조주의 철학자, 문학평론가. 그를 수식하는 말은 넘쳐나지만 무엇보다 그는 ‘사랑’에 정통한, 관능적인 지식인이었다.

관능은 어디에서 오는가. 관능은 생각의 뿌리, 뿌리를 둘러싼 흙, 돋아나는 가지, 꽃, 잎, 열매에서 비롯한다. 관능이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작용’을 뜻한다면, 누군가는 ‘대관절 글에 그런 걸 배어나게 해 어디에 좋은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텍스트에 배인 관능은 놀라운 ‘약동’을 불러온다. 사랑을 사랑 너머로 데려 가고, 편견의 장막을 찢는다. 생각을 뒤집고, 의식을 깨운다. 그의 글을 읽을 때면 꽃나무처럼 피어나는 기분이 든다. 생각이 뿔처럼 돋아나고, 지난 사랑이 새롭게 보인다. 시를 끼적이게 하고, 텍스트 너머에 대한 상상으로 이끈다.

바르트가 쓴 ‘사랑의 단상’은 프랑스에서 20만부나 팔렸다. 나는 이 책을 감히, ‘사랑의 바이블’이라 부르겠다. ‘코에 난 작은 점’, ‘사랑을 사랑하는 것’, ‘기다림’, ‘그 사람의 몸’, ‘질투’, ‘왜?’, ‘사랑의 외설스러움’, ‘다정함’… 다채로운 소제목 아래 바르트는 문학 텍스트, 담론, 독백, 방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다. “마음은 욕망의 기관이다(마음은 섹스처럼 부풀어오르거나 오그라든다).”(85쪽) 마음이 욕망의 기관이라면, 사랑은 이 기관에서 생겨나고 소멸하는 무엇이다. 사랑은 무엇이며, 사랑하는 자는 누구인가.

‘사랑의 단상’을 원작으로 한 프랑스 영화 ‘렛 더 선샤인 인’ 포스터. 주인공 이자벨(줄리엣 비노쉬)은 남편과 이혼 후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선다. 아드 비탐 디스트리뷰션 제공.
‘사랑의 단상’을 원작으로 한 프랑스 영화 ‘렛 더 선샤인 인’ 포스터. 주인공 이자벨(줄리엣 비노쉬)은 남편과 이혼 후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선다. 아드 비탐 디스트리뷰션 제공.

기다리는 자: “기다림은 하나의 주문(呪文)이다. 나는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화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렇듯 하찮은, 무한히 고백하기조차도 어려운 금지 조항들로 짜여있다. 나는 방에서 나갈 수도, 화장실에 가거나 전화를 걸 수도(통화 중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없다.”(66쪽) 슬퍼하는 자: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죽은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랑하는 이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전히 삶을 계속해 나가는 것을 본다.”(280쪽) 방황하는 자: “사랑은 어떻게 끝나는 걸까? 뭐라고요? 그렇다면 사랑은 끝이 나는 것이란 말인가? 결국 어느 누구도, 타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이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일종의 순진함이 영원처럼 이해되고 확인되고 체험된 이 일의 종말을 은폐한다.”(149쪽)

롤랑 바르트 생전 모습. 프랑스의 지식인, 기호학자, 구조주의 철학자, 문학평론가… 그를 수식하는 말은 넘쳐나지만 무엇보다 그는 ‘사랑’에 정통한, 관능적인 지식인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롤랑 바르트 생전 모습. 프랑스의 지식인, 기호학자, 구조주의 철학자, 문학평론가… 그를 수식하는 말은 넘쳐나지만 무엇보다 그는 ‘사랑’에 정통한, 관능적인 지식인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내가 사랑의 복판에서 길을 잃고 신음할 때 ‘사랑의 단상’을 읽고, 또 읽었다. 페이지마다 사랑에 목숨을 건 시인, 광인, 죽어가는 베르테르(괴테)가 등장한다. 시처럼 아름답고 함축적인 문장이 나를 관통했으나, 사랑에 놓여나지 못했다. 한밤중, 15층 오피스텔의 창가를 서성이며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가 “사랑의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자살의 충동이 자주 일어난다.”(311쪽)는 구절을 읽으며, 출렁이는 마음을 눌렀다. 나뿐이 아님을, 내 잘못이 아님을, 사랑에 빠진 모든 광인들이 그러함을, 책은 일깨워 주었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ㆍ김희영 옮김

동문선 발행ㆍ342쪽ㆍ2만원

이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보았는가. ‘밀당’과 ‘썸’이 사랑의 자리를 대체하는가. 바르트는 “사랑의 감정은 유행에 뒤진 것이지만, 이제 이 유행에 뒤진 것은 구경거리조차 될 수 없다. 사랑은 관심 있는 것의 시간 밖으로 추락한다. 그리하여 어떤 역사적인, 논쟁적인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사랑이 외설적인 것”(257쪽)이라고 말한다. 포르노와 스캔들에 밀려난 사랑, 구닥다리로 전락한 사랑. 사랑의 텍스트는 “작은 나르시즘과 심리적인 치사함으로” 만들어지기에 “어떤 위대함에도 합류할 수 없”다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하염없이 시인과 철학자들은 사랑에 눈멀어, ‘사랑의 텍스트’를 양산하고 있다. 사랑 담론은 계속 될 것이다. 사랑, 그 펄럭이는 깃발, 잡을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여!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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