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이 해상에서 발견된 사망자의 신원을 찾기 위해 시신의 얼굴 사진을 담은 수배 전단 수십장을 배포한 것은 물론, 신원확인이 끝난 뒤에도 여객터미널 대합실에 부착돼 있는 문제의 전단을 떼어내지 않아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해양경찰청과 평택해경 등에 따르면 평택해경은 지난해 11월 1일 평택당진항 내항관리부두 인근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던 신원미상의 남성 시신을 발견, 수습했다. 변사사건 처리지침에 따라 지문을 조회했으나 신원 확인이 되지 않자 시신발견 사흘 뒤인 같은 달 4일 수배 전단 80부를 제작해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과 선사대리점, 부두 관계자 등에게 배포했다.
전단에는 사건 개요와 함께 '신장 약 160㎝, 마른 체형, 상·하의 중국어로 된 상표' 등 변사자 특징, 담당 형사팀 연락처, '평택해양경찰서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변사자 수배 전단과 달리, 이 전단에는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은 시신 얼굴 사진과 속옷 하의를 입은 시신의 엉덩이 부위 사진까지 들어 있었다.
중국 동포로 추정되는 변사자 신원 확인 과정에서 해경의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된 이유다. 더구나 이 전단 한장이 어떤 이유에선지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대합실 내 게시판에 4개월가량 부착돼 있어 이를 본 관광객들 사이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평택항 여객터미널에서 만난 한 중국 동포 관광객은 "어떻게 죽은 사람 얼굴 사진을 저렇게 버젓이 게시판에 붙여 놓은 건지 이해가 안 간다"며 "돌아가신 분 얼굴이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고 전했다. 이어 "옷에 중국상표가 있어 중국인으로 추정되니까 저렇게 했지, 한국인이라면 시신 사진을 붙였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 변사자의 신원은 시신발견 닷새 뒤인 지난해 11월 6일 주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평택해경에 신원미상 시신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 변사자의 가족이 평택해경에 찾아오면서 확인이 됐다.
앞서 평택해경은 같은 달 2일 중국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변사체 발견 사실을 알린 바 있다. 이렇게 유족을 확인한 해경은 법무부를 통해 같은 달 9일 인천공항 출입 기록이 남아 있던 변사자의 신원을 재확인 했다. 결과적으로는 수배 전단 없이도 시신 신원 확인이 가능했던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결과 변사자는 최근 10년가량 국내 체류 중인 가족을 만나러 지난해 10월 입국했으며, 사망 전 가족들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평택해경 관계자는 "시신이 발견됐을 당시 유족의 입장을 고려해 조금이라도 신속히 신원을 확인하려고 수배 전단을 배포하게 됐다"며 "해양 업무 관련 종사자들에게 전단을 나눠준 것은 맞지만 형사팀 확인결과 평택항 대합실 게시판에 전단을 붙인 해경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다만 "사망한 분의 얼굴 사진 등을 민간에 노출한 것은 인간 존엄성 차원에서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해경청 관계자는 "변사사건 처리지침에는 변사자 수배 시 얼굴 사진을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며 "하지만 일선 서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발생한 만큼 변사자 인권 문제에 더 신경을 쓰도록 제도 개선을 고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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