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부모 등 친권자의 자녀 체벌 금지를 명기한 아동학대방지법 등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훈육’을 이유로 한 체벌 금지 외에 아동상담소의 역할 강화 등을 내용을 담아 이번 국회에 처리할 방침이다. 다만 체벌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도 거론된다.
20일 요미우리(讀賣)신문 등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전날 총리관저에서 열린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의결, 중의원에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부모가 18세 미만 아동의 훈육 시에 체벌을 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기했고, 아동복지시설 등에서의 체벌도 금지했다. 아울러 △아동의 일시 보호 등을 별도의 아동상담소 직원이 담당 △아동상담소에 의사ㆍ보건사를 각각 1명 이상 배치 △변호사 상시 배치 등 아동상담소를 지도ㆍ조언할 수 있는 환경정비 등이 포함됐다.
정부가 법안 개정을 서두르는 것은 지난해 도쿄(東京) 메구로(目黒)구에서 발생한 5세 여아, 올해 지바(千葉)현에서 초등학교 4년생 여아가 부모의 학대로 사망하면서 아동 학대 및 체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내에선 “유효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야당의 추궁을 받아 여론의 비판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아동단체는 환영하고 나섰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아이들에 대한 체벌금지를 사회적 규범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도 법안에 명기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1979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전세계 54개국이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체벌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민법에는 ‘아이들의 이익을 위해 보살피고 교육할 권리’, ‘보살핌과 교육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자녀를 징계할 수 있다’는 부모의 ‘징계권’이 규정돼 있다. 체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체벌을 동원한 훈육’의 구실이 된다는 점에서 재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향후 법률에서 금지하는 체벌의 범위를 지침으로 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교사들에 의한 아동ㆍ학생에 대한 체벌을 금지한 학교교육법을 참고할 방침이다. 이에 따르면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장시간에 정좌하도록 해 육체적 고통을 주는 행동 등을 체벌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교통 내에서 우는 아이를 조용히 하라며 팔을 움켜잡거나 엉덩이를 두드리는 행위 등에 대해선 분명한 선 긋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도쿄 23개구 등 주요 도시에 아동상담소를 의무적으로 설치할지 여부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개정안에는 시행 이후 5년을 목표로 시설 정비와 인재 확보 등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부칙만 담겨 있을 뿐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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