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심의 주택가나 유흥업소 밀집 지역에선 온전한 하늘을 보기 어렵다. 건물과 건물, 전신주와 전신주 사이를 무수히 교차하는 검은색 케이블 때문이다. 공해 수준에 이른 케이블의 난립,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늘을 뒤덮은 케이블 중엔 배전 선로도 있지만 대부분 통신선이다. 인터넷과 IPTV 가입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통신 회선 역시 크게 늘어난 결과다. 한국일보 ‘뷰엔(View&)’ 팀이 서울 강남구와 강북구, 마포, 서대문구의 인구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니 설치 기준을 지키지 않는 등 무분별하게 설치된 통신선으로 인해 각종 문제점이 노출돼 있었다.
전국 전신주의 소유 및 관리 주체인 한국전력의 ‘통신선의 전주 설치 기준’에 따르면 고압선 및 변압기 등 전력 시설은 전신주의 상부에, 통신선의 경우는 그보다 아래에 30cm 간격으로 설치된 2가닥의 조가선(금속 재질의 지지선)을 따라 설치하게 되어 있다. 조가선 한 가닥당 설치할 수 있는 통신선은 최대 24가닥이다. 고압선과의 접촉을 막고 전신주가 견딜 수 있는 하중을 감안한 기준이다. 그런데 상당수의 통신선이 그 수를 세지 못할 정도로 불규칙하게 뒤엉켜 있거나 고압선과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깝게 지나고 있었다. 통신선 뭉치와 각종 장비가 조가선 대신 다른 통신선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기 일쑤였고 그마저 풀려 있는 경우도 발견됐다. 통신선 수십 가닥의 무게와 장력으로 인해 기울어진 전신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같은 통신선의 난립은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시민 안전도 심각하게 위협한다.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도심에 설치된 전신주는 매설 깊이가 얕고 차량 통행 등으로 인해 지지 기반이 약해지기 쉬운데 통신선이 늘어나면 하중이 커지고 공기와 접촉하는 단면적이 증가해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라면서 “이 같은 영향이 누적되면 전신주 파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태풍과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정전이나 통신 두절 등으로 인한 2차, 3차 피해도 불 보듯 뻔하다.
통신선 난립의 가장 큰 원인은 통신사 간의 과열 경쟁이다. 통신사는 전신주를 소유한 한국전력에 임대료를 지불하고 정해진 규정에 따라 통신선을 설치해야 하는데 고객 유치가 급하다 보니 규정을 무시한 채 일단 설치부터 하고 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전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무허가 통신선은 124만4,792 가닥, 그에 따라 추징한 위약금만 1,700억원에 달했다.
신 상품이 출시되거나 신규 또는 변경 가입 시 새 통신선을 설치하면서 기존에 쓰던 선은 그대로 남겨두는 작업 관행도 전신주에 미치는 하중을 키운다. 철거되지 않은 기존 회선의 경우 추후 활용률은 높지 않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관계자는 “빌라나 소형상가 밀집 지역의 경우 가입자마다 선로 배치 요구가 다양한 데다 고객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작업을 하다 보면 선로를 추가하거나 새로 설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돼 온 통신선 문제는 얽히고설킨 모양새만큼 난해하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통신선을 설치한 업체가 통신 3사 외에도 지역 케이블TV사업자들까지 워낙 많아 일일이 시정을 요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일괄적인 정비 사업을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간이 문제다. 2016년 확정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 미래창조과학부)의 ‘공중케이블 정비 중장기 종합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 공중선 정비에 1조 6,250억, 지중화에 9,160억원이 투입된다. 비용은 한전과 방송통신사업자, 지자체가 분담한다. 여기에 가입자에게 일일이 사전 공지와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므로 공정은 더디고 사고 위험은 커진다.
대규모 정비 사업도 좋지만 명확하고 객관적인 통신선 설치 기준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찬오 교수는 “현재 전신주 통신선 가설에 관해 한전의 자체 기준만 있을 뿐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어 공중선 정비를 마친 지역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문제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라며 “정부는 통신선 설치 허가와 관리를 한전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법적 기준을 마련해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관계자는 “통신선 난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선 지중화 방안을 논의 중이며 공사기간을 단축하고 매설 공간을 최소화해 비용을 줄이는 공법을 연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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