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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왜곡의 피해자는 진실 모르는 청소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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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왜곡의 피해자는 진실 모르는 청소년들입니다”

입력
2019.03.23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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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소송’ 이끄는 김정호 변호사 

[저작권 한국일보] 김정호 변호사는 “5ㆍ18 역사 왜곡을 멈추게 하려면 전두환씨를 단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정호 변호사는 “5ㆍ18 역사 왜곡을 멈추게 하려면 전두환씨를 단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

경제학의 거장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ㆍ1842∼1924)이 경제학도가 갖춰야 할 자세를 강조한 이 경구는 법조계에서도 흔히 인용된다. ‘전두환 회고록’ 관련 소송을 이끌고 있는 김정호(46) 변호사도 예외는 아니다.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늘 이 말을 가슴에 품었던 그였다. 그러나 그 신념은 지난 11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5ㆍ18민주화운동 관련 사자명예훼손 사건 재판을 보면서 격하게 흔들렸다. 법정에 선 1980년 5월 광주학살 주범의 당당함, 그리고 재판 중 꾸벅꾸벅 조는 모습에 속이 뒤집힌 것이다. 김 변호사는 “그 순간 저는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이 아니라 감정적 (재판)참여자에 가까웠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날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김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검사들에게 다가가 “왜 증거목록을 제출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전두환 피고인을 향한 또 다른 분노의 표현이었다. 김 변호사는 “법률가로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5ㆍ18역사왜곡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서 전두환 회고록 관련 소송에 참여했다”며 “그러나 그때(5ㆍ18)나 지금이나 당당한 전두환씨나, 이를 보면서도 광주가 또 고립될까 항의도 못하는 현실이 서러워 울컥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2017년 4월 5일 ‘전두환 회고록’이 출간되자 곧바로 동료 변호사들과 공익소송에 뛰어들었다. 5ㆍ18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한 전 전 대통령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그가 맡은 전두환 회고록 관련 소송만 4건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정호 변호사
[저작권 한국일보] 김정호 변호사

김 변호사가 전두환 회고록 소송에 뛰어든 건 2016년 6월 월간지(신동아)에 난 전 전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5ㆍ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특히 “북한 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왔다”는 지만원씨 주장에 대해서도 전 전 대통령은 “어디로 왔는데”라고 냉소를 드러냈고, 부인 이순자씨도 “우리 부부랑 연결하면 안 된다”고 거들었다. 김 변호사는 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속으로 ‘전두환이 정신을 차렸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은 1년도 안 돼 인터뷰 발언을 뒤엎는 회고록을 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김 변호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회고록에서 5ㆍ18 관련 부분만을 따로 발췌해 채록집을 만들고, 일일이 관련 자료를 찾아가며 팩트체크에 들어갔다. 그 결과 헬기 사격과 북한군 개입 폭동 등 69개가 허위 사실임을 밝혀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이며 사실과 다른 서술을 회고록에서 삭제하도록 했다. 5ㆍ18을 왜곡한 ‘전두환 회고록’이 외려 5ㆍ18 진상규명의 계기가 된 셈이었다.

김 변호사는 “5ㆍ18을 왜곡하고, 거짓을 사실이라고 우기는 전 전 대통령의 자신감에는 ‘오염된 5ㆍ18자료’에 근거한다”고 했다. 5ㆍ18을 왜곡ㆍ조작하는 데 앞장섰던 511연구위원회를 얘기한 것이다. 511연구위원회는 1988~89년 국회 5ㆍ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앞두고 당시 보안사령부 주도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육군본부,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꾸린 기구다. 511연구위원회는 5ㆍ18을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군 자위권 발동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등 지금까지 일부에서 5ㆍ18을 폄훼ㆍ왜곡하는 논리의 뿌리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자명예훼손 재판을 보면서 ‘전두환씨는 절대 반성하지 않겠구나’라는 확신이 섰고, 그만큼 재판을 더 치밀하게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전두환씨는 당당하고, 그 피해자들은 전두환씨가 반성하길 바라며 몸을 사리는 탓에 전두환씨가 민주주의의 혜택을 받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김 변호사의 답변은 단호했다. “5ㆍ18 역사 왜곡의 피해자는 광주시민과 5ㆍ18희생자들이 아닙니다. 가짜 뉴스에 속고 있는 국민들과 5ㆍ18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청소년들입니다. 5ㆍ18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방법은 전두환 피고인을 단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광주=글ㆍ사진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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