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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서 눈치 보며 그림 그리던 청년, VR 작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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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서 눈치 보며 그림 그리던 청년, VR 작가가 되다

입력
2019.03.20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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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청담동 브로큰브레인 사무실에서 만난 염동균 이사가 가상현실(VR) 아티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지난 7일 서울 청담동 브로큰브레인 사무실에서 만난 염동균 이사가 가상현실(VR) 아티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지난 7일 찾은 브로큰브레인은 작업실과 사무실 그 중간쯤이었다. 벽을 이젤 삼아 기대고 있는 캔버스들에는 염동균 브로큰브레인 이사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가득 차 있었고,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벽장에는 서적들이 한 가득 꽂혀 있었다. 브로큰브레인은 미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다.

“책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는다”는 염동균 이사의 직업은 국내 최초 가상현실(VR) 아티스트다. 그는 붓과 물감 대신 VR 컨트롤러를 쥐고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다. 사무실 입구에 있는 화이트보드에는 이미 중국, 베트남, 미국 등 그의 해외 스케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염 이사는 VR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단순 명료하게 정리했다. 그는 “쉽게 말하면 VR 기기를 착용하고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며 “VR 기기로 그림을 그려내고, 관객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보여 주는 공연을 한다”고 말했다. 그가 무대 위에서 머리에 VR 기기를 쓰고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그의 뒤에 서 있는 대형 스크린에 동시 송출된다. 지난해 11월 열린 세계한상대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VR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염 이사는 “해외에도 비슷한 공연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모두 VR 기기나 서비스를 시연하기 위한 공연일뿐, 예술을 통한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는 경우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예술과 생계는 항상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순수 예술을 업으로 삼고자 할 때마다 생계가 발목을 잡았다. 염 이사는 “부모님 집에 얹혀살 때 베란다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돈 되는 일은 해야 하고 그림은 그리고 싶은 상황이라 의뢰가 들어오는 작업들만 하게 됐다”며 “한때는 돈을 벌기 위해 보험회사에서 영업 일도 했다”고 말했다.

평소 정보기술(IT) 제품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VR에 눈을 돌리게 된 건 구글의 ‘틸트 브러쉬’ 광고였다. 틸트브러쉬는 3차원(D) 공간에서 손에 쥔 조작 장치로 실물 크기의 3D 그림을 그리는 VR 애플리케이션이다. 그는 “기존 그림과 다른 점은 3D로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라며 “평면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대상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표현해 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작동 방법에 익숙해진 뒤에도 그는 “무식하게 계속 작업했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작품을 소개하면서 점차 입소문이 퍼졌다. 혼자 하던 작업을 지금은 7명의 식구가 브로큰브레인이란 회사를 꾸려 함께 하고 있고, 후배 아티스트도 육성 중이다. 그는 “지금도 이 일자리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하고 VR뿐 아니라 증강현실(AR) 등 관련 기술을 끊임 없이 공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작은 캔버스에서 했지만 IT 시장 변화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다”며 “기술에 예술을 가미하는 개념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업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해외 시장 개척이 가장 큰 도전과제다. IT 인프라는 한국이 가장 잘 구축돼 있지만 시장이 워낙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공연 시장도 우리나라는 아직 8,000억원 규모인데 중국은 8조원 규모”라며 “이 직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해외로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도 도전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염 이사는 “AI가 언젠가는 예술도 대체할 거라는 예상도 나오지만, 아직 수준이 떨어진다”며 “기술이 발전한다면 이 기술을 공부해서 예술 파트너로 AI를 활용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평생직업이란 건 없다”며 “항상 ‘그 다음 나의 업’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정말 작은 시장이라도 겁먹지 말고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 이사는 “나만 한다면 ‘온리 원’이기 때문에 1등하려 경쟁할 필요도 없으니 조금만 생각을 바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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