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조직’ 강조하는 최태원 회장 철학 반영
SKT ‘휴직 2년ㆍ기본급 지급ㆍ복직 가능’ 프로그램
SK하이닉스 엔지니어 무정년… 다른 계열사도 준비
SK그룹이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 퇴직금에 위로금을 얹어주고 직원들을 내보냈던 명예퇴직 관행을 없애는 실험을 하고 있다. 명예퇴직 대신 직원들에게 창업 등을 할 수 있는 휴직 기간을 보장하고,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복직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직원들이 보다 안정된 상황에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인데,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직원들이 행복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최태원 회장의 생각이 반영된 실험이라는 평가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비정기적으로 실시하던 명예퇴직 제도를 전면 중단하고 대신 올해 ‘넥스트 커리어’ 프로그램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만 50세 이상이거나 근속 기간이 25년 넘는 직원이 신청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정년 퇴직을 앞둔 직원들이 최장 2년 간 휴직 하면서 회사 밖에서 창업 등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도전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는 휴직 기간 동안 직원들에게 기본급 100%를 지급하고, 학자금과 의료비 지원 등 현직 직원과 같은 수준의 복리후생도 모두 제공한다. 실제 창업을 준비하는 직원에게는 6개월 과정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무료로 지원하고, 창업 후 6개월 간 사후관리도 도와준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휴직 기간 종료 후 직원이 원할 경우 복직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퇴직에 내몰린 직장인들이 무작정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할 경우 이를 만회할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직원이 2년 후 퇴직할 경우엔 기본 퇴직금에 위로금 5,000만원도 추가로 지급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누구나 겪게 되는 ‘제2의 인생’ 설계 시점에서 고용 안정성을 저해하는 기존 퇴직 중심 프로그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넥스트 커리어’ 제도를 도입했다”며 “이 제도는 경제적 지원과 함께 이후 복직의 길도 열어 놔 직원들이 안정된 신분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나이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정년 파괴’ 실험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무정년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전문성을 갖춘 우수 엔지니어들이 정년 이후에도 연구개발ㆍ제조ㆍ분석 등의 업무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제도는 지난해 9월 현장 직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마련됐다.
SK하이닉스는 이 제도로 우수 기술인력들이 정년을 넘어서도 회사에 남게 돼 직원 본인은 물론이고, 회사의 기술 역량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제도 운영을 해보고 결과를 분석해, 대상자를 엔지니어에서 일반 직원 등으로 넓히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반도체 개발ㆍ제조 분야의 숙련된 인력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무정년 제도는 회사에도 큰 이익”이라며 “올해 정년 대상자부터 제도를 시행해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SK이노베이션 등 다른 SK그룹 계열사도 대규모 구조조정 없이 직원들이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거나 퇴직 때 회사 밖에서 정착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 마련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최근 큰 성장을 이룬 SK그룹의 정보통신기술(ICT) 계열사들이 눈부신 실적을 기반으로 ‘좋은 직장 만들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사인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0조 8,430억원으로 그룹 전체 영업이익(약 25조원)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수익성이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SK텔레콤 역시 연 매출 16조 8,700억원에 영업이익 1조 2,000억원을 기록한 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사회적 가치 확산을 강조하는 최태원 회장의 경영철학도 SK그룹의 이 같은 행보에 반영 됐다는 평가다. 최 회장은 평소 “재벌이 돈 버는 데만 집중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조직 구성원들의 행복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올해 경영 화두를 ‘직원 행복’으로 내세우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횟수를 늘리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한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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