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들이 제작한 광고… 인증사진 넘쳐나
하루 평균 730만명이 이용하는 서울지하철은 ‘광고물의 전쟁터’다. 플랫폼 벽면부터 스크린도어, 전동차 내부까지 빼곡히 채워진 온갖 광고들은 승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서울지하철 중에서도 2호선은 하루에 240만명 이상을 목적지로 실어 나르는 가장 혼잡한 노선이다. 전국의 지하철 노선 중 승객 수는 압도적인 1위. 당연히 광고전도 가장 치열하다.
이런 서울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신당역 방향)과 ‘잠실역’(잠실나루역 방향) 스크린도어에 최근 보라색 바탕에 ‘자주성신(自主誠信)’이란 한자가 적힌 광고물 하나가 등장했다.
네 명의 일러스트 모델이 역동적인 동작으로 글자와 어우러진 이 광고는 ‘성신’에서 유추할 수 있듯 대학 홍보용이지만 흔히 봤던 대학 광고들과는 차이가 있다. 오른쪽 상단에 적혀 있는 ‘수정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광고입니다’란 문구가 힌트다.
◇재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대학 광고
19일 성신여대에 따르면 지난 1일 선보인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는 재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학교를 홍보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기획 프로젝트다. 학생들이 대학 홍보에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함께 대학 문화를 만들어가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진행해온 그간의 노력들이 스크린도어 광고에 투영됐다.
앞서 지난해 성신여대는 학생 공모를 통해 대학 대표 캐릭터인 ‘수룡이’를 탄생시켰고 졸업생 동문들과 협업을 통해 대학 기념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성신여대 관계자는 “대학이 학생들을 끌어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학생들 스스로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지지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며 “대학은 도화지를 준비해주는 곳이고, ‘자주(自主)’의 색으로 칠하는 건 학생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도 학생들을 위한 도화지 중 하나다. 이 도화지를 채운 건 ‘수정이’들이다. 수정이는 성신여대 재학생을 일컫는 구성원들만의 애칭이다.
정신 없이 바쁜 출근 시간이나 피로에 젖은 퇴근시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잠실역에서 자주성신 광고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성신여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번 광고가 엄청난 화젯거리로 부상했다.
새 학기 개강 첫날 스크린도어를 자주색으로 물들인 광고를 등굣길에 접한 학생들이 앞다퉈 재학생 커뮤니티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각각의 게시물에는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렸다.
‘성신여대 재학생인 게 자랑스럽다’ ‘역동적인 이미지가 매우 마음에 든다’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홍보하고 싶다’ 등의 내용이 꼬리를 물었다. 성신여대 공식 SNS에 올라간 광고 관련 게시물도 하루 만에 추천수가 1,000여 건에 달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열광적인 반응은 이번 광고가 재학생의 선호를 성공적으로 반영했다는 의미다.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를 전적으로 재학생에게 맡긴 대학 측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학생들이 제작한 두 지하철역의 스크린도어 광고는 최소 4개월 이상 2호선 승객들을 맞는다.
◇도화지에 ‘자주(自主)’ 색을 칠한 학생들
모험적인 시도였던 성신여대 스크린도어는 올해 1월 ‘재학생의 애교심과 자부심을 드높이고 수정이들의 당당함을 어필하는 특별한 광고를 만들어보자’는 홍보팀의 제안으로 출발했다. 총학생회가 기획 회의에 참여해 재학생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반영해 메인 카피인 ‘자주성신’이 결정됐다.
성신여대에서는 학생들이 서로를 응원할 때 ‘파이팅’ 대신 ‘자주성신’을 외치곤 한다. 캠퍼스 내에서는 자주성신이 ‘해내자’ ‘이루자’의 의미로 통용된다. 성신여대의 색을 가장 잘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자주성신’을 메인 카피로 정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메인 카피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광고학회 ‘애디슨(ADisOn)’ 회원들이다. 밤낮으로 고민한 애디슨 회원들은 단순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로 단어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자주성신이란 각각의 글자에 배치한 사람은 재학생 개인을 의미하고, 개개인을 하나로 응집시키는 존재가 바로 대학이란 점을 차별성과 역동성을 살려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애디슨 회원인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7학번 김선아씨는 “기존 대학 광고들과 달리 여성 모델을 표현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면서 성신여대 재학생이 지닌 역동성을 드러내고 싶었다”며 “전체적인 콘셉트인 재학생들의 자주정신이 대학을 변화시키는 핵심이란 것을 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글자에 해당하는 사람 네 명의 동작도 이들이 수없이 기획회의를 하며 오랜 고민한 결과다. ‘자’는 당당하게 걸어가는 여성, ‘주’는 확성기를 사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 모습, ‘성’은 성취의 기쁨을 마음껏 표출하는 모습, ‘신’은 배움에 정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7학번인 서현진씨는 “각각의 인물 의상부터 헤어스타일, 신발까지 고민하며 구체적인 인물의 이미지를 완성했다”며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들이 제대로 구현될지 걱정이 많았는데 최종 시안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고 밝혔다.
◇모두가 만족한 색다른 도전과 특별한 기억
나름 자신은 있었지만 광고를 기획한 이들의 만족과 대외적인 평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애디슨 회원들에게는 아이디어를 나눠주고 자신들을 믿어준 재학생들의 만족도가 특히 중요했다. 광고를 완성하고 게재되기 전까지 회원들은 가슴을 졸이며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김선아씨는 “재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해 대외적인 광고판에 우리의 목소리를 실을 수 있다는 게 무척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혹시나 반응이 생각과 다르면 어쩌나 우려도 많았다”면서 “광고가 게재되고 재학생 커뮤니티에 긍정적인 반응과 열띤 호응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정말 감격했다”고 전했다.
애디슨 회원들은 재학생이 광고 제작을 주도한 게 대학생의 감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주효했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 대학 광고들은 드러내고 싶은 성과나 자랑하는 학과, 학교시설 등에 초점을 맞췄고, 재학생 모델이 등장해도 광고를 제작한 주체가 학생 자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7학번 한유진씨는 “애디슨 활동을 하며 기존 대학 광고의 틀을 벗어난 광고를 만들어 보고 싶은 열망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며 “총학이 설문조사를 거쳐 카피를 결정한 만큼 재학생 모두가 이번 광고 제작의 주체가 된 셈”이라고 했다.
같은 학과 17학번 서해윤씨는 “대학 측이 학생들 의견에 귀를 기울여준 기억이 특별하게 남을 것 같다”며 “사실 인물 동작이나 의상 등을 구상할 때 ‘반드시 이렇게 해달라’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는데, 대학 입장에선 다소 파격적인 제안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준 점이 무척 고맙다”고 밝혔다.
일러스트를 담당한 산업디자인과 17학번 장민서씨에게도 재학생이 주체가 된 광고 제작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장씨는 기획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사진 촬영이나 실루엣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방법 대신 일러스트를 제안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그는 “기존 대학 광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작업했다”며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한편으론 걱정도 적지 않았는데 ‘그림이 멋있다’ ‘그림 누가 그렸냐’는 댓글을 보니 무척 기쁘고 뿌듯하다”고 밝혔다.
정준기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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