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시행 앞두고 예비강사들 강단 진출 길 막혀
전임교수는 업무 과다… 학생은 강의 수 줄어 수강신청 대란
정부 안일 대응ㆍ대학 꼼수에 학문 생태계 파괴 우려
수도권의 한 전문대에서 5년째 글쓰기 강의를 맡고 있는 박사 수료생 김지윤(가명ㆍ32)씨는 요즘 밤에 자주 잠을 설친다. 8월부터 시행되는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앞두고 다음 학기 강의를 배정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 때문이다. 김씨는 “(박사)학위가 없으니까 가장 먼저 정리 대상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사법 시행을 한 한기 앞둔 대학가가 홍역을 앓고있다. 강사들의 교원 지위를 인정해 방학 중 임금, 퇴직금 등을 지급하고 1년 이상의 임용을 보장하라는 게 강사법의 골자.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 서정민씨가 강사의 열악한 처우와 임용비리를 고발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강사, 대학, 정부, 정치권이 수없이 교섭을 벌였고 법 시행은 4차례나 유예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서씨의 죽음 이후 9년 만에 법 시행이 목전에 다가왔지만 대학 구성원 대다수가 불안감을 느끼고 불편을 겪고 있다. 대학은 대학대로, 강사는 강사대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예비강사들, 고참 강사에 밀려날 가능성
특히 박사학위 없이 강단에 서 온 박사 수료생들, 예비강사나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학문을 계속하려는 신진학자들에게는 구조조정의 한파가 매섭게 느껴진다. 5월부터 시작되는 강사 공개 채용 때 박사학위가 있는 고참강사들과의 채용경쟁에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을 밟는 대학원생들이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기까지는 보통 7~9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대학원생들에게 강의는 연구와 동떨어지지 않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앞으로는 이 길이 크게 좁혀질 참이다. 김지윤씨는 “지금은 시간당 3만3,000원 하는 강사료로, 한 달에 100만원가량 벌고 있다”며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가면 돈을 더 받을 수는 있겠지만 연구와 병행하는데 방해가 되니 강의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다음 학기 강의를 배정받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상황이 되면서 생계 유지와 학문적 커리어 구축을 병행할 수 있을지가 김씨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동국대에서 지난 4년간 글쓰기를 가르쳐온 박사과정 수료생 이진구(가명ㆍ34)씨는 이번 학기에 아예 강의 배정 받는 일을 포기했다. 미뤄 둔 박사 논문을 쓰는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는 “갈수록 수료생 신분이라는 게 붕 뜬 느낌”이라며 “강사법 시행으로 강사 공개채용이 시작되면 박사학위가 있어야 강사 지원도 가능해질 것 같아 논문을 서두르게 됐다”고 말했다.
줄어든 자리를 둘러싼 기존 강사와 학문신진세대의 갈등이 내포된 가운데 전국대학원생노조는 5월 시작되는 강사 공개채용 때 대학들에 신진 학자들을 위한 쿼터를 배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학 강사 수는 2011년 11만2,087명에서 지난해 7만5,329명으로 해마다 많게는 1만명, 적게는 1,000명씩 꾸준히 감소했다. 문제는 지난해 11월 강사법 통과 이후 감소 폭인데, 강사 단체들은 지난해 7만5,000명대이던 강사 수가 한 학기 만에 5만명대에 진입했다고 추산하고 있다.
◇학생들은 강의 선택권 축소, 교수들은 부담 증가에 불만
강사 구조조정의 여파는 학문후속세대의 실업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강사들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강의 시간이 대폭 늘어난 전임교원들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호소한다. 강사 구조조정이 고등교육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김용섭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지방대 같은 경우 전임교원이 주당 20시간을 강의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당 최대 9시간이 적정하다는 것이 정교수들의 생각이지만 강사들의 구조조정이 계속될 경우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계에선 강사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 신진 학자들의 유입이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강사법 관련 대학 구조조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강사 공대위) 공동대표인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는 “강사 자리가 없어지면 연봉 1,000만원정도만 받으며 연구할 수 있는 길마저 봉쇄된다”며 “당장은 이익 같아도 이는 결국 학문 생태계를 파괴하는 자학 행위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학이 강의 숫자를 줄이면서 학생들의 강의 선택권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대학들은 전체 강의 숫자를 감축하거나 졸업이수학점을 줄이기도 한다. 자연스레 대형 강의가 많아지면서 학생들은 불만은 커졌다. 연세대 강사 공대위에 따르면 이번 학기 신촌캠퍼스의 전체 교양강의는 1,041개에서 922개로 지난 학기에 비해 10% 감소했고, 국제캠퍼스의 글쓰기 강의 분반 수는 29%(83개→59개), 대학영어 분반 수는 24%(157개→129개) 줄었다. 고려대 사회학과 황민용(22)씨는 “이번 학기 교양과목이 워낙 많이 줄어 수강신청에 실패한 고학년들이 (저학년 필수과목으로 지정된)전공과목에 몰리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저학년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며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크게 축소됐다”고 말했다.
물론 가장 직접적인 불안을 느끼는 건 베테랑 강사들이다. 성균관대에서 8년간 미술사 강의를 해온 조이한(51)씨도 이번 학기 강의를 배정받지 못했다. 개강을 앞두고 강사가 아닌 초빙교수로 계약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더니, 학교 측은 강의를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대학 강사 경력만 14년인 그는 지난해까지 대학 3곳에 출강했지만, 이번 학기에는 한 곳에서만 강의를 한다. 그는 “강사들은 10~20년간 해오던 일이기 때문에 보통 학기 중 시간을 비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도 않는다”며 “외벌이거나 1인 가구인 강사들은 잘릴 경우 생계에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난 학기까지 대학 3곳에서 강의하다 이번에 한 강의도 못 받고 해촉된 강사도 봤다”며 “그러고도 대학 눈 밖에 날까 항의도 제대로 못 하는 게 강사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학들은 강사법 적용 대상이 아닌 비전임교원, 겸임교원이나 초빙교원으로 기존 강사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조씨처럼 기존 강사들에게 비전임교원으로 계약할 것을 요구하거나, 소속된 기관이 있어 겸임·초빙교원 계약이 수월한 경력자를 찾기도 한다. 지방 소재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인 남모(42)씨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대학강사를 주업으로 할 때보다 더 많은 강의 제안을 받았다. 남씨는 “연락 온 대학들은 모두 대학원이 있는 곳들이어서 강사를 못 구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며 “지방에 있는 나에게 새삼 강의 제안이 늘어난 이유가 뻔하지 않겠느냐”고 씁쓸해했다. 대학들은 강사법 적용을 최대한 회피하기 위해 강사와 학기단위로 계약하는 관행을 깨고 2, 3년 장기 계약을 하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2011년부터 강사로 경제학 강의를 해왔던 김어진(50)씨는 “법이 시행돼도 이런 강사들에게는 방학 중 임금이나 보험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며 “강사법이 소급 적용이 안 된다는 점을 영리하게 이용했다”고 꼬집었다.
◇강사들 “정부 강력한 의지 보여야”
강사 단체들은 강사법 통과 이후 대학들의 이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이 충분히 예견됐음에도,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했다며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부에게 올해 추경 때 강사처우개선비 예산을 적극적으로 확보해 달라고 요구한다. 올해 강사처우개선비 명목으로 편성된 예산은 방학 중 임금 2주분에 해당하는 288억원인데, 강사법 시행(8월) 이후 방학 기간이 2개월(8주)인 점을 고려하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김진균 강사 공대위 대변인은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도 대학이 계속 구조조정을 하는 건 그동안 엄포만 놓고 결국 실천을 안 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법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사 공대위 등 강사단체들은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과 강사들에 대한 예산지원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