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문화재보존과학센터 가 보니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탑은 ‘상처’가 많은 문화재다. 고려시대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해 1085년 강원 원주 법천사에 세운 탑을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이 해체해 서울 명동으로 옮겼다. 1년 뒤 일본 오사카로 반출된 탑은 그 해 다시 귀환, 1915년 서울 경복궁에 터를 잡았다. 끝난 줄만 알았던 고난은 계속됐다. 한국전쟁 중 포탄을 맞아 1만여 조각으로 파손된 것. 1957년 서둘러 복원하는 과정에서 시멘트가 쓰이고 일부 파편은 위치가 바뀐 채 접합됐다. 지광국사탑은 2016년부터 대전 유성구 문화재보존과학센터(보존센터)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고 있다. 현재는 파손 부재 접착, 구조 보강 등 작업이 진행 중으로, 2020년 ‘완치’가 목표다.
#2015년 강원 양양 선림원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보살상 한 점이 출토됐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귀한 유물이었다. 불상의 표정과 자세로 봐선 범상치 않은 것임이 분명했지만, 흙과 녹이 표면에 뒤엉켜 있는 데다 오른쪽 발목이 떨어져 나가는 등 상태가 아슬아슬했다. 긴급 보존 요청을 받은 보존센터는 곧장 불상을 인수해 엑스레이 촬영과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재질, 성분 등을 조사한 뒤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금속 재질이 워낙 예민해 현미경으로 녹을 한 겹 한 겹 벗겨내야 했는데, 세척, 건조, 녹 제거에만 3년이 넘게 들었다. 불상은 올해 완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보존센터는 낡고 훼손된 문화재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문화재 종합 병원’이다. 1969년 문화재연구실의 일부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발족했다가 2009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내 센터로 정식 설립됐다. 병원처럼 석조와 금속, 도자기, 지류, 직물, 목재, 벽화 등 전문 분야가 7개로 나뉘어 있다. 복원 전문 사설 업체도 있지만, 고난이도의 유물ㆍ문화재 복원은 대부분 보존센터를 통한다.
문화재 보존 및 복원 처리 과정은 이렇다. 기관, 개인의 의뢰가 접수되면 특별 장비를 동원해 문화재를 이송하고 기초 조사를 진행한다. 유물의 내부와 원형을 추정하고 파손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엑스선 투과, CT, 3D 스캔 등을 활용한다. 이후에는 ‘세척→안정화→강화→접합→복원→색맞춤’ 등의 세부 작업이 단계별로 이어진다.
최근 둘러 본 보존센터는 소리 없는, 아니 소리를 내면 안 되는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직물 보존실에선 조선 중기 사명대사가 착용한 금란가사(황금색 중국 비단으로 만든 승려복)의 훼손된 틀을 일일이 바느질해 완성한 상태였다. 금속보존실에선 고려시대 정지장군 갑옷(보물 제336호)을 이루는 수백 개의 철 고리를 하나하나 잇고 다듬는 중이었다. 목재보존실에선 전북 순창 농소고분에서 출토된 목관의 수분이 마르지 않도록 종일 가습기를 틀어 습도를 맞추고 있었다. 양양 금동보살상을 보존 처리 중인 유동완 연구원은 “조금만 손을 잘못 대도 유물이 훼손되거나 되레 부식속도가 빨라질 수 있기 때문에 숨 한번 내쉬는 것도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
문화재 복원에 현대 재료를 주로 사용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되도록 전통 재료를 활용하자는 공감대가 크다. 복원 과정 중 재료 공수에 특히 품을 많이 들이는 이유다. 지광국사탑은 부분별로 총 5개 암석으로 구성됐는데, 흑운모 화강암 등 탑과 잘 맞는 돌을 찾는 데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2016년부터 창덕궁의 어좌 뒤에 걸렸던 ‘일월오악도’를 복원 중인 안지윤 연구사는 “유물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한지 장인에게 직접 재료를 공수해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존 작업이 완료되는 기간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4년 이상까지 문화재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 문화재에 묻은 흙 알갱이 하나도 사료가 될 수 있어 임의 처분이 금지돼 있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작업 사이사이 전문가의 자문과 승인도 받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존센터를 거쳐야 할 문화재 숫자가 쌓이고 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보존센터에서 치료를 마친 문화재는 총 317건. 현재도 지광국사탑과 양양 금동보살상을 비롯한 490건의 문화재가 보존 처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관리ㆍ행정직(6명)을 제외한 보존센터 내 조사ㆍ안전관리ㆍ복원 실무 인원은 28명뿐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복원ㆍ보존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보존센터의 지원 방안을 여러 각도로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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