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앙 살비올리 유엔 진실ㆍ정의ㆍ배상ㆍ재발방지 특별보고관 방한
“과거사 해결을 위해 진실과 정의, 배상, 재발방지라는 절차를 이행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다.”
파비앙 살비올리(Fabian Salvioli) 유엔 진실ㆍ정의ㆍ배상ㆍ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은 19일 제주 제주시 제주KAL호텔에서 제주 4ㆍ3희생자 유족회와 제주 4ㆍ3 기념사업위원회 주최로 열린 '국제 인권 기준에서 본 한국의 과거사 청산'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이날 “한국 과거사, 특히 제주 4ㆍ3사건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과거사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은 물론 한국 정부에게도 모든 협력을 제공할 의지가 있다”며 “특히 과거사 해결에 나서는 것은 정부의 선택이 아니라 국제법, 국제조약에 따른 의무”라고 과거사 청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정부로, 무력분쟁에서 평화상태로 전환되는 지역에서 과거의 대규모 인권침해를 해결하고 책임성과 정의, 화해를 달성하는 과정을 ‘전환기적 정의’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전환기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진실 규명, 형사적 정의(사법적 조치), 배상, 재발방지 등 4가지 원칙에 ‘기억’이라는 영역을 추가해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진실ㆍ정의ㆍ배상ㆍ재발방지와 기억의 영역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일부만 이뤄질 경우 제대로 (과거사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정부가 하나의 영역에서 해결이 이뤄졌다고, 다른 영역의 조치를 포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그 과거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현재로 돌아온다. 과거사를 해결하지 않고는 미래로의 전진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저의 조국인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경험”이라며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위한 제대로 된 충분한 배상, 그리고 재발방지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1976~1983년 소위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군부독재정권의 탄압시기를 겪은 아르헨티나는 독재정권이 무너진 3년 후인 1986년에 인권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사면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국민들이 어두운 과거사 청산을 강하게 요구해 20여년만에 사면법을 폐기한 것은 물론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양한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인권변호사이자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5월 특별보고관에 임명됐다. 유엔 진실ㆍ정의ㆍ배상ㆍ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은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50여개의 주제별 특별절차 담당관들 중 하나로, 과거사 문제와 연관된 인권상황에 대해 조사ㆍ감시 후 권고를 담은 연례 보고서를 인권이사회에 제출한다. 유엔 진실ㆍ정의ㆍ배상ㆍ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이 우리나라를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이번 살비올리 특별보고관 방문도 비공식적인 참석이다. 다만 이번 한국 방문은 오는 9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될 연례보고서에 포함되는 것은 물론 향후 제주 4ㆍ3사건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우리나라 과거사에 대한 유엔 차원의 공식 조사가 이뤄지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20~21일 제주4ㆍ3사건 희생자ㆍ유족들을 만난 후 서울로 이동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긴급조치위반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 형제복지원 피해자 등을 찾아 과거사 피해 상황을 직접 파악할 계획이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