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절 전후 평양행 관측 무성… 대북 선물 마땅찮아 회의적 시각도
한반도의 4월은 늘 굵직한 이벤트로 요동쳤다. 재작년에는 전쟁위기설로 일촉즉발의 불안감에 휩싸이더니 작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평화의 순풍이 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첫해인 2012년에는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해 미국과 어렵게 맺은 2ㆍ29합의가 한달 만에 깨졌고 이후 북미는 오랜 대립국면으로 치달았다.
올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여부가 그 중심에 섰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터라,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를 자처한 중국의 해법이 교착국면에 물꼬를 틀 수 있는 결정적 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집권 8년 차에 접어들도록 중국 최고지도자는 아직 북한 땅을 밟지 않았다. 여기에 북중 수교 70주년이라는 상징성까지 겹치면서 시 주석의 행보는 동북아 정세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꼽힌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19일 “시 주석이 4월 주최하는 일대일로 정상포럼, 6월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10월 중국 건국 70주년 행사는 일찌감치 확정된 일정”이라며 “하지만 방북이나 방한의 경우 막판까지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안에 남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지만 구체적 시기는 조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4월 방북설은 올 초부터 불거졌다. 김 위원장이 1월7~10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답방을 요청했고 시 주석이 흔쾌히 수락했다”면서 “적절한 시기에 시 주석의 방문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북한 최대 기념일인 4월15일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에 맞춰 시 주석이 평양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이를 확인하듯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1월11일 “시 주석이 4월 북한, 5월에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것 같다”고 운을 떼자, 막 주중대사를 마치고 돌아온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상반기에 방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가세하면서 4월 방북에 더 무게가 실렸다.
북한과 중국은 수교 60주년을 맞은 2009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총리가 각각 상대국을 방문하며 우의를 다졌다. 절정으로 치닫는 비핵화 국면을 감안하면 올해 70주년은 양측이 격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올해 10월 텐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중국의 굴기(崛起ㆍ우뚝 섬)를 확인할 대규모 열병식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하반기에 시 주석이 북한을 찾는 건 여의치 않아 보인다. 4월 말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등 전세계 40여 개국 정상이 일대일로 정상포럼 참석차 베이징으로 몰려드는 터라 4월 중순을 넘기면 상반기 일정도 불확실해진다.
그렇다고 시 주석이 한국을 먼저 찾는 건 무리다. 시 주석은 2014년 7월 한국에 들른 반면, 김 위원장이 지난 1월까지 네 차례 중국을 오가는 동안 한번도 평양을 찾지 않았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한국 정부도 시 주석의 방한을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순서상 북한이 먼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남북한을 잇따라 동시에 방문한다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강력한 퍼포먼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 주석의 4월 방북은 부담도 적지 않다. 우선 1월 김 위원장의 방중 당시 북한과 달리 중국 매체 보도에서는 시 주석의 ‘답방’ 부분이 쏙 빠졌다.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 대북제재가 여전한 상황에서 중국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매듭짓지 못한 상황에서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을 찾아가 손을 잡는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대놓고 자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며 북한과 중국을 향해 언제든 판을 흔들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던진 만큼 중국이 위험을 감수할 지 의문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북한은 혈맹이라 김 위원장이 중국에 몇 번을 오더라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반대로 시 주석이 평양을 찾은 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특수관계인 남북과 달리 제3자인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곧이 인정한다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중국이 던질 묘수가 마땅치 않은 점도 걸림돌이다. 비밀리에 논의가 진행된 과거와 달리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이 이미 패를 다 공개한 상황이라 중재자 중국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시 주석의 방북으로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 비핵화 국면은 더 꼬이고, 그 책임은 온전히 중국이 짊어져야 할 수도 있다. 가뜩이나 경제성장 둔화로 골치를 앓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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