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청춘의 절망과 분노 보여줘
뜯어진 운동화 신고 촬영장에
“초등3학년 내내 컵라면으로 배 채워… 준하는 나”
“항상 부족했던 나, 고민 많아져”
얼굴 달아오른 남주혁
“안 그래도 죽지 못해 겨우 사는데 이래라 저래라하지 말라고!”. 지난달 26일 방송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취업준비생인 준하(남주혁)는 백발의 혜자(김혜자)에게 고함을 지른다. 노인복지관에서 일하며 노인들의 눈먼 돈으로 마지못해 살아가는 준하를 혜자가 비난해서였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준하는 불우한 가정사 때문에 정상적인 취업조차 어려웠다. 그런 그는 복지관에서 유일하게 진심을 나눴던 샤넬 할머니(정영숙)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자 나락에 빠진다. “장례식장에서 혜자 선생님이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고 하시잖아요. 그때 정말 슬펐어요. 그래서 제 인생을 애틋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19일 오전 서울 합정동 한 카페. 드라마 종방(19일)을 앞두고 드라마 얘기를 하던 남주혁(25)의 얼굴과 눈 주변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촬영하면서 울컥했던 감정이 다시 밀려온 듯했다.
“나 역시 꿈에 다가가지 못한 청년”
세상 본류에 진입하지 못해 서글프고 분노에 가득 찼던 준하는 이 시대 ‘88만 원 세대’의 자화상이다. 남주혁은 “힘들게 살아가는 그리고 꿈을 꾸지만 다가가지 못한 청년이 대부분이잖나”라며 “나 역시 20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느끼는 똑같은 고민을 배역에 투영해 연기했다”고 말했다.
남주혁은 준하로 살기 위해 사소한 것부터 신경 썼다. 런웨이를 당당하게 누비던 모델 출신 배우는 화장을 안 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청춘의 맨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집에서 입는, 하도 오래 입어 무릎 부분이 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촬영을 하기도 했다. 운동화도 일부러 볼 부분이 뜯어진 걸 신고 나갔다.
화려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남주혁과 준하는 많이 닮았다. 기자를 꿈꾸던 준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컵라면으로 배를 채운다. 남주혁도 초등학교 3학년 때 1년 내내 컵라면만 먹었다고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였다. 남주혁이 당시 살던 집엔 화장실도 실내에 없었다고. 남주혁은 “이곳 저곳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다”며 멋쩍게 웃었다.
대본 읽고 더 욕심 내
남주혁은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가 아니었다. 2014년 드라마 ‘잉여공주’로 연기를 시작해 ‘후야유-학교2015’ ‘치즈인더크트랩’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역도요정 김복주’ 등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지만, 때론 연기력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남주혁은 “나도 부족했다는 걸 알고 있어 질타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원망도 분노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눈이 부시게’로 배우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아 기쁘다. 하지만 부담도 커졌다. 남주혁은 “‘연기가 늘었다’는 얘길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아직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모르는 게 많고 부족하다. 다만 더 노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주혁은 ‘눈이 부시게’ 촬영이 “너무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워낙 우는 장면도 많고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배역과 드라마에 몰입해 배우로서 즐거웠다는 설명이었다. 젊은 배우에게 올해 연기 56년 차인 김혜자와의 연기 호흡은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다.
남주혁은 지난해 ‘눈이 부시게’ 대본을 읽고 작품에 욕심을 냈다고 한다. 그가 바라던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어서였다. 애정이 커 드라마를 떠나 보내기도 쉽지 않았다. 남주혁은 마지막 촬영에서 펑펑 울었다.
“제 마지막 촬영이 마침 우는 장면이었거든요. 그 감정이 남기도 했고 이제 끝난다는 아쉬움 그리고 눈이 부시게 행복했던 촬영 순간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을 많이 흘렸던 것 같아요. 많이 부족하지만, 연기의 길로 접어들며 공감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자는 꿈을 꾸며 살아온 만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가 보려고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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