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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AF, 자이어, 알바트로스

입력
2019.03.20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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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를 공격하라.” 1942년 5월 20일 일본의 야마모토 제독이 함대에 보낸 전문이다. AF가 어디일까? 워싱턴의 합참본부는 AF가 하와이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육군 항공대는 알래스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태평양 함대 사령관은 이곳이 하와이 인근의 미드웨이 제도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세 곳에서 무턱대고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럴 만큼 충분한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AF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아야 했다.

하와이 해군 첩보대는 미드웨이 제도의 해수 정화장치가 망가졌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그러자 일본군 통신부대는 AF에 식수가 부족하다고 보고했다. 이로써 일본 함대의 목표가 미드웨이 제도라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일본 해군은 미 함대가 여전히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결과는 뻔하다. 자그마치 165척의 함정을 동원한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했다.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 전쟁의 터닝 포인트였다. 나는 미드웨이 해전을 어릴 때부터 알았다. 찰턴 헤스턴과 헨리 폰다가 출연한 영화 ‘미드웨이’(1976년)를 TV에서 숱하게 봤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영화에 나오는 항공기 전투 장면은 대부분 일본 영화 장면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도대체 미드웨이 제도가 어떤 곳이기에 미국과 일본은 사력을 다해서 미드웨이를 차지하고 지키려고 했을까? 미드웨이 제도는 ‘중간점’이란 뜻의 이름처럼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의 중간에 있다. 일본은 미드웨이 제도를 차지하여 하와이와 미국 본토 공격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미드웨이 제도의 규모가 꽤 큰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작은 산호초 섬 세 개에 불과하다. 가장 큰 섬이 5㎢가 되지 않고 섬 세 개를 합쳐봐야 6.2㎢밖에 안 된다. 태평양전쟁 전에는 고급 휴양지였지만 전쟁 중에는 군용 비행장을 갖춘 해군기지로 활용되었다. 현재 인구는 60명 정도지만 모두 비행장과 항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실제 거주자는 0명인 셈이다. 보잘 것 없는 섬이다. 단지 위치가 중요할 뿐이다.

미드웨이라는 이름은 잊혀졌다. 태평양 전쟁 후 건조되어 베트남전쟁과 걸프전 때 맹활약 하다가 1992년 퇴역하여 미국 샌디에고에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거대 디젤 항공모함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세계인 대부분의 관심에서 사라진 미드웨이 제도가 한 사진가의 작품 때문에 다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 조던.

크리스 조던은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에 담는 작가다. 그런데 그의 사진 속에 있는 자연은 단지 아름다운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애도와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인 게 바로 ‘미드웨이: 자이어의 메시지’ 연작이다. 낯선 작품인가? 작품명은 처음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연작 사진을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다. 죽은 새의 배가 갈라져 있다. 배 안에는 온갖 플라스틱이 가득하다. 기억나시는가? 그렇다. 바로 그 사진이다. 연출이 아니다. 실제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들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새들은 주로 알바트로스다. 알바트로스는 우리말로 ‘신천옹(信天翁)’이란 어마어마한 이름으로 불리는 커다란 새다. 날개 길이가 3~4m나 된다. 활공만으로 수십 km를 날 수 있다. 주로 물고기나 다른 해양생물을 먹는 새들이 왜 플라스틱을 먹게 되었을까? 자이어(Gyre) 때문이다.

자이어는 북태평양 한류를 뜻한다. 북태평양 한류는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자이어 때문에 태평양 한가운데에 거대한 플라스틱 섬이 생겼다. 요즘은 아예 ‘태평양 플라스틱 섬’을 자이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드웨이 제도는 알바트로스의 최대 번식지다. 알바트로스는 수십 일 동안 장거리 비행을 하면서 바다 표면에 떠오른 먹이를 낚아채 와서 새끼에게 먹인다. 그게 플라스틱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독자께서 여기까지 읽는 데 대략 5분이 걸렸을 것이다. 그 사이에 지구에서 사용된 비닐 봉투는 대략 720만 장이다. 우리는 1초에 2만 4,000장의 비닐 봉투를 버리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바다로 흘러간다. 전 세계 바다에는 1㎢당 약 3만 2,000장의 플라스틱이 떠다니고 있다. 흰 비닐 봉투는 해파리처럼 보인다. 거북이 먹는다. 입을 크게 벌려 먹이를 먹는 고래 입으로 플라스틱이 빨려 들어간다. 새들은 플라스틱을 낚아채 새끼에게 먹인다.

크리스 조던은 플라스틱을 버리는 인간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알바트로스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슬픔을 전달하고자 할 뿐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다음 생에 알바트로스로 태어나면 좋겠어요. 그러면 새들에게 플라스틱을 먹지 말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드웨이 해전 때도 별 피해를 당하지 않았던 알바트로스가 플라스틱으로 죽어가고 있다. 다음 생에 알바트로스로 태어나야 할 사람은 크리스 조던 한 사람이면 족하다. 우리는 이번 생에서 플라스틱을 줄이고 치워야 한다. “AF를 구하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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