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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술 권하는 사회에서 술 사양하는 사회로

입력
2019.03.1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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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한잔 받으세요…. 당연히 첫 잔은 완샷이겠죠? 반샷 안돼요~” “술은 좀 하세요?...음~~ 이슬 한 방울?” “나~~순한 네가 너무 좋아.” 젊은 남녀의 닭살 돋는 대화가 아니다. 수지, 아이유, 박보영 등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는 스타들이 등장하는 소주 광고다. 효리, 김희선, 이영애, 김태희, 전지현, 설현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은 모두 술 광고 모델을 거쳤다. 오래전 이영애가 모델로 나왔던 소주 브랜드는 1년 사이 판매량이 4배 정도 급증했다. 텔레비전 맥주 광고에서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은 상표를 기억하는 데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있다. 술 광고의 힘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스타들이 광고에서 부드럽고 깨끗함을 강조하는 술은 역설적으로 건강 수명을 단축하는 질병 위험 요인 중 1, 2위를 다툰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10만여명이 음주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한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20배에 달하는 수치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무려 9조4000억원. 흡연이나 비만보다도 많다. 흡연의 경우 건강 위험 때문에 담배가격도 인상하고 담뱃갑에 위협적인 경고 그림도 넣는다. 그러나 술은 어떠한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소주를 보고 두 번 놀란다고 한다. 한 번은 값이 너무 싸서. 두 번은 소주병에 예쁜 여자 스타의 얼굴이 있어서. 이쯤 되면 술 권하는 사회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술 권하는 문화가 주류 광고 탓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하루 평균 3시간을 넘게 보는 텔레비전에서도 술은 종종 주인공이다. 미운 우리 새끼, 인생 술집 같은 예능 쇼에는 ‘동문회 축하 소주 분수 쇼’ ‘모두 원 샷’ 등 폭음을 규범화하는 자막들이 버젓이 등장한다. 약 4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는 폭음 장면이 유독 많았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는 송중기(유시진 역)가 진구(서대영 역)에게 말한다, “쏘주는 제가 사겠습니다… 무박 3일.” 다음 장면에선 몸을 못 가누는 두 주인공과 빈 소주병 십수 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중국을 비롯한 해외 32개국에 수출되어 한류의 새 장을 쓴 이 드라마는 3일 동안 잠도 안자고 술을 마시는 한국의 폭음 문화도 함께 수출했다.

음주의 사회적 폐해는 심각하다. 음주운전, 성폭력, 묻지마 폭행 등 강력 사건 상당수가 음주와 관련 있다. 요즘 19금 영화를 방불케 하며 언론의 관심을 장악한 버닝썬 사건, ‘승리 게이트’에도 아이돌 가수가 음주운전을 무마하려고 경찰에 청탁한 내용이 포함된다. 음주 관련 사건에서 “술 마셔서 기억이 안나는” 것이 면죄부가 되고, “술 마시고 그럴 수도 있지”하며 관용을 베푸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다.

보다 못해 정부가 나섰다. 주류 광고에서 모델이 술을 마시는 장면이나 소리를 금지하고, 주류 광고 금지 시간을 확대했다. 방송인들에게 음주 장면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미디어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술 광고에서 모델의 음주 장면이 사라지고, 미디어에서 술 장면이 덜 나온다고 음주 문화가 쉽사리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담배 광고가 미디어에서 전면 금지되고, 흡연의 건강 폐해가 부각되면서 친흡연 문화가 사라진 전례가 있다. 한 사회의 문화를 선도하는 광고와 미디어가 노력하면 음주 문화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

3월은 환영회, 오리엔테이션, 엠티 등 대학 신입생 행사가 많은 달이다. 매년 이런 행사에선 음주와 관련된 사건사고로 젊은이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했다. 올해는 그런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 음주 강요와 군기 잡기 대신 “완샷?” 하면 “전 술 안 해요” 하고 당당하게 사양할 수 있는 젊은 문화가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란다.

백혜진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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