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B&B 박종엽 대표
서울 동대문구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 5번 출구 바로 옆에 자리한 H빌딩 5층. 이 곳에 커피숍이 하나 있다. 보통 커피숍이 길 모퉁이나 대로변 1층에 있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의외의 장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리면 곧바로 보이는 커다란 딸기 사진들, 그 옆을 지나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테이블 4개가 오붓이 배치돼 있는 커피숍 안에 편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이 곳은 사회적기업 한화B&B가 운영하는 커피숍 ‘Beans&Berries’ 매장이다. 13일 오후 커피숍에서 잠깐 뜸을 들인 뒤 한 층을 올라가 6층 본사 사무실에서 박종엽 대표를 만났다.
◇드문 대기업 계열 사회적기업…직원 30%는 취약 계층
한화B&B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화그룹에서 시작한 회사다. 2006년 1월 한화갤러리아 식음료사업팀에서 ‘Beans&Berries’ 1호점을 열었고, 5년이 지난 2011년에는 100억원 매출을 기록할 만큼 ‘잘 나가는 커피 매장’ 중 하나였다.
2013년 한화그룹이 비정규직 근로자 2,000여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결정을 하면서, 운명은 달라졌다. “단순히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과 양질의 일자리를 나누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누군가의 제안이 있었고,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보도록 하자”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Beans&Berries’는 그렇게 2013년 3월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1년 정도 준비 과정을 밟게 된다. 대기업이 재단을 통해 사회적 기업을 후원하고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사례는 많지만, 이처럼 잘 나가는 계열사 하나를 아예 사회적 기업으로 바꾸는 시도는 아주 이례적인 것이었다.
“쉽지 않았죠. TF를 만들어서 어떤 방식으로 일자리 창출과 연계해 사회적 공헌 활동을 할 것인지 공부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만 해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을 때니까요.” 박종엽 대표의 회상이다.
그 해 12월 한화B&B가 그룹에서 분리되면서 준비는 완료됐고, 1년이 지난 2014년 11월 회사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게 됐다. 박 대표는 “대기업 중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1년 만에 첫 심사를 받아 통과된 것도 거의 유일한 사례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대기업 계열사 중 한화B&B처럼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은 곳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사회 취약 계층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설립 취지에 맞게, 한화B&B는 전 직원 200명 중 60명(30%)이 한부모가정 자녀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다. 전국 34개 직영 매장 직원만으로 한정하면 비중은 더욱 높아져 40%에 이른다.
물론 이들은 다른 커피숍 매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도 아니고, 시간제 근로자도 아니다. 모두 정직원 신분이다. “한화그룹 직원과 동일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근무 시간도 하루 8시간으로 고정돼 있고요.” 직원 손채원씨 얘기다. 박 대표도 한 마디 거들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한달 인건비만 1억3,000만원 정도입니다. 그 만큼의 고용 효과를 내고 있다는 얘기죠.”
◇연매출 150억원…”치열한 영업이 사회 공헌”
‘취약 계층에 대한 양질의 일자리 제공’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지만, 그저 ‘착한 기업’만을 내세워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치열한 커피 전문점 시장 경쟁에서 안정적 수익을 내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털어놨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와의 경쟁, 그리고 속속 생겨나는 중소업체와 개인 운영 커피숍들. 커피전문점 시장은 ‘약육강식’의 세계다.
“고용을 하려면 인건비 등 비용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걸 감당하려면 기본적으로 매출 등 실적이 뒷받침 돼야 합니다.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고객들이 처음 한 번은 매장을 들를 수 있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철저한 경쟁입니다.”
한화B&B는 지난해 150억원 가량의 매출을 기록했다. 품질 좋은 원두를 쓰고, 생과일 재료를 고집하는 등 상품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2014년 첫 출발 할 때의 매출 100억원보다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규직 고용, 최저임금 인상 등이 직접적인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커피 업계 특성상 직원들의 빈번한 이직 문제도 리스크로 작용한다. 다른 업체와 비교해 상당수 직원들이 오랜 기간 근무하는 편인데, 이를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 대표는 “매장 마다 먼저 들어온 직원과 새로 들어오는 직원 간 멘토링 제도를 활성화 하는 식으로 신입 직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일을 정해 멘토링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금액 지원도 하고 있다. “그 날에는 영화를 보던 소풍을 가던, 함께 뭔가를 하면서 회사 적응에 대한 고민,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서로 털어놓고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어요.” 경영지원팀 조유미 사원의 말이다.
박 대표는 강조한다. “돈을 벌어 남는 것을 사회 공헌 활동에 사용하는 게 아니라, 영업 그 자체가 사회 공헌이라는 진정한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구현하는 쪽으로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사회적기업으로서의 활동에 상당 부분 속도가 붙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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