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감흥을 음식으로 잇는다”
미술과 음식 결합 행사 늘어
지난 3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호텔아트페어(AHAF)는 쿤(KUN), 안준, 히노 고레히코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 외에도 미술 수집가들의 마음을 흔든 숨은 주역들이 있다. 비비비당, 할매복국, 풍원장미역국 등 화상들이 부산 곳곳을 직접 돌며 선택한 지역 맛집들이다. 미술 수집가들이 2박 3일간 작품 감상을 하면서 음식도 탐미하는 ‘아트 앤 고메(Art & Gourmet)’ 투어를 주최 측이 마련했는데, 외국인 20명을 포함한 60여명이 여기에 몰렸다.
본전시가 열린 파라다이스호텔 내 VIP룸에선 비비비당의 호박식혜와 목련꽃차가, 점심에는 조개로 푹 고아 낸 뜨끈한 풍원장미역국이, 저녁엔 잘 구운 해운대암소갈비의 소갈비가 준비됐다. “한국의 맛, 분위기를 함께 추억할 수 있으니 작품 감상이 두 세배로 즐거워졌다”는 게 참석자들의 평. 주최 측도 음식 덕을 봤다. 지난달 28일부터 나흘간 열린 아트페어 수익(입장권 및 작품 판매 수익)은 약 2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5%가량 늘었다.
화랑가는 요즘 미술과 음식을 결합시키는 작업으로 분주한다. 까다로운 미술수집가와 관람객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어떤 활동이든 맛있는 음식을 곁들이는 문화 트렌드가 자리잡은 데다, 음식으로 감상 효과를 더욱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 AHAF처럼 다양한 작품과 음식을 연계시키는 프로그램이 느는 한편, 주요 갤러리들은 최근 1, 2년 사이 자체 운영 레스토랑을 새롭게 꾸미고 있다.
음식은 갤러리의 첫인상에 영향을 끼치면서 전시 감상 분위기를 돋운다. 하지만 음식이 되레 독이 될 수도 있다. 갤러리들이 까다로운 선정ㆍ개발 과정을 거쳐 어떤 음식을 선보일지 결정하게 되는 이유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는 20여년간 갤러리 1층에 유치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빌을 지난해 3월 두레유로 대체했다. 유현수 셰프가 가회동에서 운영하는 두레유 본점에 이어 2호점을 들인 것. 이탈리안 메뉴가 중심인 여느 갤러리 레스토랑과 다르게 퓨전한식을 다루는 점이 특징이다. 가나아트센터 관계자는 “한국 작가들을 주로 다루는 갤러리 이미지와 연결되고, 한국화의 감흥을 맛있는 한식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2호점은 갤러리 레스토랑답게 가회동 본점과 차별화했다. 특히 메뉴 구성을 달리 했다. 본점은 파인다이닝 코스로 가격대가 높지만, 2호점은 전시 관람이 주목적인 관람객들을 위해 단품, 캐주얼 한식 중심으로 꾸려 가격 부담을 낮췄다. 대표 메뉴는 ‘나물어탕수’(2만3,000원)다. 우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긴 후 방풍나물과 삼채 튀김을 함께 플레이팅한다. 우엉채를 넣은 간장 소스가 얹어진다. 쫄깃한 우럭의 식감과 자극적이지 않은 달콤한 소스 덕에 외국인 미술 수집가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소수를 대상으로 폐쇄형으로 운영되던 갤러리 레스토랑을 전면 개방해 고객층을 확장하는 경우도 적잖다. 2015년부터 2층 카페를 운영해 온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가 대표적이다. 초기에는 미술 수집가나 사전 예약자에 한정해 카페 겸 레스토랑인 PKM가든을 운영했다. 입소문을 타고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전시에도 관심 갖는 관람객이 늘면서 2017년에는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점심식사를 팔고 있고, 지난해 12월부터는 디너까지 개방형으로 운영 중이다. “’아트 투 다인(Art to dineㆍ작품에서 식사까지)’이라는 세계적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한 시도”라는 게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의 이야기다.
PKM가든은 전시와 메뉴 사이의 연계성이 수시로 유지되도록 갤러리 대표가 직접 운영하는 게 특징이다. 호주 제이미 올리버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김의도 셰프가 주방을 맡았고, 메뉴 개발에 수시로 대표나 큐레이터들이 참여한다. 대표 메뉴는 ‘PKM가든 파스타’(2만4,000원)다. 황태 머리와 이탈리아 파슬리, 샐러리, 마늘, 후추 등 재료를 3시간 끓여 만든 육수로 만들어 맛이 깊다.
관람객 세대교체도 갤러리 레스토랑 재정비의 주요 요인이다. 경양식 ‘함박스테이크’ 자체로 유명한 일민미술관 내 카페 이마도 10여년간 이어온 메뉴에 최근 변화를 줬다. 근대적 분위기의 기존 함박스테이크에 더해, 지난해 말 치즈와 크림을 소스로 하는 ‘베샤멜 크림 함박스테이크’(1만5,500원)를 추가했다. 2030 관람객의 입맛에도 맞고, 잦아진 현대 미술 전시와의 연계성도 높아져 미술관 홍보에도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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