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사태에도 강남 클럽 중심 성상품화 만연]
외모 번듯한 여성만 골라 무료 입장시켜
수백만원 테이블 차지한 남성들에 연결
의식 잃게 해 성폭행, 몰카 촬영 후 공유
“너희는 교통카드 하나 들고 와서 놀지만, 우리는 몇 백만 원 들여서 너희들 술 먹인다. 이렇게 나가면 우리는 뭐가 되냐. 조금 더 있다 가라.”
지난해 1월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서 놀던 20대 여성 손님 A씨. 술에 취해 정신을 잃자 클럽 영업직원(MD) 이모(40)씨는 A씨를 인근 호텔방으로 옮겼다. 몇 시간 뒤 정신을 차린 A씨가 화들짝 놀라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자 이씨가 버럭 내지른 호통이었다. A씨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공포 속에서 그렇게 1시간 반 정도를 더 갇혀 있다가 호텔 직원이 물을 가지고 온 틈을 타서 겨우 도망쳤다. 경찰에 체포된 이씨는 감금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A씨의 호통은 ‘클럽 문화’의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수 승리(29ㆍ본명 이승현)와 정준영(30)이 불러일으킨 파문으로 버닝썬이나 아레나 등으로 상징되는 클럽의 삐뚤어진 성 상품화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원래 클럽은 술보다는 춤에 방점이 찍힌, 옛날 카바레나 나이트클럽과는 좀 다른, 요즘 젊은이들의 쿨하고 힙한 문화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한풀 벗겨본 클럽 문화는 ‘여성 사냥터’였다.
여성의 외모나 복장을 보고 입장 여부를 결정하는 클럽의 ‘입뺀(입장 뺀찌ㆍ입장을 허용하지 않음)’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클럽은 남성에게 입장료를 받지만 여성에겐 화려하고 야한 화장과 옷차림을 요구한다. 남성이 수백만 원을 내고 클럽 내 좋은 테이블을 차지한다는 것은 곧 ‘입뺀’으로 한차례 걸러진, 외모가 반듯한 여성을 공급받는다는 의미다. 돈을 많이 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록 엠디들은 열과 성을 다해 ‘여성 게스트’를 물어다 바친다.
한 클럽의 현직 MD B씨는 ‘총공격 시간’이 있다고도 했다. B씨는 “비싼 돈을 내고 테이블을 잡은 남성 게스트에게 이른바 ‘물게(물 좋은 게스트)’를 공급하기 위해 클럽마다 ‘총공격 시간’을 설정해뒀다”고 전했다. 그 시간이 되면 “여자 손님들에게 술을 계속 줘서 중앙 스테이지로 나오게끔 지시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남성은 그렇게 만난 여성을 인격체가 아니라 사냥감으로 본다. 비싼 돈 내고 왔으니, MD들이 분위기를 조성해 흥청망청 취하도록 해줬으니, 남성은 여성을 성폭행하고 이를 카메라 등으로 촬영한 뒤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기까지 한다. 불법촬영 사진, 동영상은 ‘그래선 안 되는 범죄’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승리의 상징’이 된다.
남성은 여기에 끼고 싶어 안달이 난다. C씨는 2017년 7월 ‘끈나시’(끈만 달린 민소매 상의)를 입은 채 서 있는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뒤 이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목적은 단 하나,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원나잇(즉석 성관계)’ 했다”라 허풍을 떨어대기 위해서였다.
이런 분위기는 클럽을 찾는 여성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한다. 업무 스트레스가 쌓일 때 클럽을 즐겨 찾았다는 이모(27)씨는 “노래를 정말 큰 음향에 흠뻑 빠져 즐기고 싶을 때 클럽을 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클럽에 들어서는 순간 오직 남성들의 ‘먹잇감’으로만 취급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클럽에서 성별간 입장료 차이가 있고, 여성 입장료가 없다는 건 결국 여성이 하나의 상품으로 제공된다는 의미”라며 “여성은 자신이 상품으로 거래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버닝썬 사태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해서 이런 분위기가 크게 바뀌진 않았다. 현직 클럽 MD인 D씨는 “지금 언론에 나오는 건 강남 지역 클럽들이지만 이런 문제는 이태원, 홍대나 지방의 다른 클럽들도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모든 클럽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런 식의 클럽 운영을 기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성 상품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클럽에 대한 대대적 단속이 있다 한들 이 구조가 깨지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또 다시 불거져 나올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ilbo.com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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