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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공장 폐쇄로 무너진 삶... 美 소도시 분투와 좌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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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공장 폐쇄로 무너진 삶... 美 소도시 분투와 좌절의 기록

입력
2019.03.14 17:54
수정
2019.03.14 21: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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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도시 제인스빌의 경제를 떠받쳤던 GM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자 도시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한 남성이 스러져 가는 건물 앞을 힘 없이 걸어가고 있다. 세종서적 제공
미국 소도시 제인스빌의 경제를 떠받쳤던 GM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자 도시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한 남성이 스러져 가는 건물 앞을 힘 없이 걸어가고 있다. 세종서적 제공

부족함 없이 자란 쌍둥이 자매 케이지아와 알리사의 평온한 삶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아빠, 돈이 없어 장보기를 주저하는 엄마를 돕겠다며 자매는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방과 후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저소득층용 샴푸와 컨디셔너 같은 생필품을 꼭꼭 챙긴다. 주사 바늘만 봐도 겁에 질렸던 아빠 재러드는 혈소판 헌혈로 생활비를 보탠다. 가족은 물건 값이 내려가는 밤 12시에 맞춰 쿠폰을 들고 마트로 향한다. 케이지아 가족은 도움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게 익숙했던, 남부러울 게 없었던 중산층이었다. 재러드가 GM 자동차 공장에서 해고당하기 전엔 그랬다.

미국 위스콘신주 인구 6만명의 소도시 제인스빌. GM 자동차 덕에 100년간 풍족하게 먹고 산 제인스빌은 2008년 GM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뿌리째 흔들린다. 워싱턴포스트 중견 기자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에이미 골드스타인은 대량 해고의 비극을 맞아 신음하는 노동자 가정과 공동체의 모습을 7년간 지켜본 기록을 ‘제인스빌 이야기–공장이 떠난 도시에서’에 풀어 냈다. 노동자, 취업지역센터장, 사회복지사, 은행가, 지역 정치인 등 각계 각층의 인물을 꼼꼼하게 취재해 다양한 시각을 더했다.

역시 GM 공장이 문을 닫은 전북 군산, 조선업 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경남 거제 등 ‘남 일 같지 않은’ 사례들이 많다. 저자는 묘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세계 어디서나 자본은 냉정하고, 노동자의 저항은 갈수록 무력해진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이다. 케이지아 자매에게 한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상황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벌어진 것이야,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란다.”

제인스빌 이야기 - 공장이 떠난 도시에서

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 이세영 옮김

세종서적 발행 •508쪽 •1만8,000원

갑자기 닥친 경제적 재앙에도 제인스빌은 한동안 분투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의외로 의연했다. 2006년에도 그랬다. GM 본사가 공장 폐쇄를 통보했을 때도 노동자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작업을 이어 갔다. “새로운 조립 라인이 들어올 계획이겠지. 자금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부르겠지.” 희망을 쉽게 버리지 않았다.

정부, 정치인, 기업, 지역 사회가 손놓은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해고자 직업 재교육’에 집중했다. 이미 생명이 다한 생산 시스템에 돈을 쏟을 바에야, 노동자를 재훈련시켜 다른 인력으로 활용하자는 복안이었다. 330만달러의 연방정부 예산이 투입됐고, 지역 내 직업센터와 기술전문대학의 협력으로 용접, 전기 배선, 교도 행정 등 각종 직업 전환 프로그램이 88개나 개설됐다. 노동자 수천 명이 희망을 품고 강의실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동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냉혹한 현실은 노동자들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당장 생활비 한 푼이 아쉬운 가장들은 느긋하게 수업을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교육 과정을 마친다고 해도 새 일자리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중도 포기자들이 속출했다. 일부는 ‘GM 집시’의 길을 택했다. 1,600km나 떨어진 다른 도시의 GM 공장으로 취직해 주말에만 제인스빌로 돌아오는 ‘역기러기’의 삶이었다.

쌍둥이 아빠 재러드는 교도관으로 다시 취직했다. 정부와 지역사회는 그를 재취업 성공 사례로 포장했다. 그러나 GM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결국 그만뒀다. 재러드는 근무 조건은 열악하고 처우는 형편 없는 직장을 전전했다. 어쩌면 재러드는 운이 좋았다. 동료 교도관은 남성 죄수와 ‘사적인 관계’가 발각된 이후 자살했다. 노동자들의 추락엔 끝이 없었다.

제인스빌의 사례는 해고자 재교육이 실효성이 있는가에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분석한 각종 통계와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교육을 받은 사람이 재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보다 취업 성공 비율이 낮았고, 새 직장에 대한 만족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한번 무너진 삶은 예전만큼 복구하기가 정말로 어렵다는 것, 그래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최대한 비극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제인스빌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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